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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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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월성(慶州 月城)은 경상북도 경주시 인왕동에 위치한 삼국 시대의 성곽이다. 그 모양이 반달과 같다 하여 반월성(半月城) 혹은 신월성(新月城)이라고도 하며, 왕이 계신 곳이라 하여 재성(在城)이라고도 한다. 성 안이 넓고 자연경관이 좋아 궁성으로서의 좋은 입지조건을 갖추고 있으며, 현재 부분적으로 성벽과 성안의 건물지가 남아 있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의하면, 반월성은 101년(파사왕 22년)에 쌓은 것으로 둘레는 1,423보(步)라고 되어 있다. 이 기록으로 미루어볼 때 궁성으로 월성을 쌓은 뒤 금성(金城)에서 이곳으로 도성을 옮겼음을 알 수 있다. 이 성은 신라 역대 왕들의 궁성이 되었으며, 나라의 규모가 커짐에 따라 부근 일대가 편입되기도 하였다. 특히 문무왕 때에는 안압지⋅임해전⋅첨성대 일대가 편입, 확장되는 등 신라의 중심지였다.

성벽의 동⋅서⋅북면은 대체로 흙과 돌로 기초를 다져 쌓고 그 위를 점토로 덮었으며, 남면은 절벽인 자연지형을 그대로 이용하여 거의 쌓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동경잡기(東京雜記)』에 의하면, 290년(유례왕 7년) 큰 홍수로 인하여 월성이 무너져 이듬해 보수하였으며, 487년(소지왕 9년)에 다시 왕이 이곳으로 이거하였다고 한다.

원래 반월성 안에는 남문(南門)⋅귀정문(歸正門)⋅북문(北門)⋅인화문(仁化門)⋅현덕문(玄德門)⋅무평문(武平門)⋅준례문(遵禮門)⋅임해문(臨海門) 등의 문과 월상루(月上樓)⋅망덕루(望德樓)⋅명학루(鳴鶴樓)⋅고루(鼓樓) 등의 누각, 왕이 정사를 돌보던 남당(南堂), 신하의 조하를 받고 사신을 접견하던 조원전(朝元殿), 삼궁(三宮)을 관할하던 내성(內省) 등 많은 건물이 있었으나 지금은 없어지고, 1741년(영조 17년) 반월성 서쪽에서 이곳으로 옮겨 만든 석빙고(石氷庫, 보물 제66호)만 남아 있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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