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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냉수리 신라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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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냉수리 신라비(浦項 冷水里 新羅碑)는 경상북도 포항시 신광면 냉수리에서 발견된 신라시대의 옛 비로, 포항의 옛 지명에서 유래된 영일 냉수리비로 널리 알려져 있다. 비의 건립 연대는 계미년(癸未年)이라는 간지와 지도로갈문왕(至都盧葛文王)이라는 인명으로 볼 때 443년(눌지왕 27년) 또는 503년(지증왕 4년)으로 추정된다. 이 비는 절거리(節居利)라는 인물의 재산 소유와 사후의 재산 상속 문제를 기록해 놓은 것으로 공문서(公文書)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냉수리비는 자연석 화강암의 전면⋅후면⋅상면에 글자를 새긴 삼면비이다. 전면은 면을 다듬었으나 후면과 상면은 다듬지 않은 채로 글자를 새겼다. 형태는 부정형 4각형이며, 밑부분이 넓고 위로 올라가면서 너비가 축소되었다.

비문은 전면에 12행 152자, 후면에 7행 59자, 상면에 5행 20자로 총 231자가 새겨져 있고 음각을 하였다. 서체는 해서체로 보이나, 예서체의 기풍이 많이 남아 있어 비문의 형태와 글씨체 면에서 중원고구려비(中原高句麗碑), 울진봉평신라비(蔚珍鳳坪新羅碑)와 매우 비슷하다. 글자의 크기는 일정하지 않으며, 비문은 크게 4개의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내용을 보면 진이마촌(珍而麻村)에서 재산분쟁이 일어나자, 지도로갈문왕(지증왕)을 비롯한 7명의 왕들이 전세 2왕(前世二王)의 교시를 증거로 하여 이것을 절거리의 소유로 판결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왕교(王敎)를 받아 중신회의(重臣會議)가 지도로갈문왕에 의해 주재된 것으로 되어 있는데, 학계에서는 이 중신회의를 신라 최고회의였던 화백으로 보고, 갈문왕이 화백의 의장을 맡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는 추론도 나오고 있으나, 아직은 연구가 더 필요한 상황이다.

냉수리비는 형태상 상면에 촌주와 관련된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상면에 글자를 새긴 것은 이 비가 최초이다. 내용면에서도 6부⋅갈문왕⋅사라(斯羅)⋅관등⋅촌주(村主)⋅도사(道使) 등 정치 제도사와 관련된 중요한 내용을 다수 보이고, 재산 분쟁 판결과 상속 문제 등은 사회 경제사 연구의 중요한 자료가 된다. 또한 국어학적으로는 이두(吏讀)의 성립 시기와 성립 과정을 추정하게 하는 단서가 된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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