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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 진흥왕 순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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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 진흥왕 순수비(北漢山 眞興王 巡狩婢)는 신라 진흥왕이 북한산에 세운 순수비로, 서울 북한산(일명 삼각산) 남쪽 승가사(僧伽寺) 서남방에 위치한 비봉(碑峰) 꼭대기에 있었으나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 순수비 부근에 승가사가 있고, 조선 태조 때의 국사였던 무학(無學, 1327~1405)의 탑비가 있어 종래 ‘무학의 비’ 또는 ‘도선(道詵)의 비’로 알려져 왔으나, 1816년(순조 16년) 7월에 김정희(金正喜, 1786~1856)가 김경연(金敬淵)과 함께 이 비석을 조사하고, 다시 이듬해 6월 조인영(趙寅永)과 같이 비문을 자세히 조사한 결과 비로소 진흥왕 순수비임을 확인하게 되었다.

비가 세워진 연대는 분명히 알 수 없으나 561년(진흥왕 22년) 창녕비가 건립된 뒤부터 568년(진흥왕 29년) 황초령비와 마운령비가 건립되기까지의 기간 중 어느 한 시기일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고, 한편 568년 이후일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비문은 비신을 연마(硏磨)한 후 정면에 12행을 새겼으나 윗부분은 심하게 마멸되었고 제12행은 판독이 불가능하며, 그 밖에도 자획이 분명하지 않은 곳이 많다. 비신의 뒤쪽에 무수한 총탄 흔적이 남아 있는 등 많은 부분이 절단 또는 손상된 상태여서 비문의 정확한 내용을 판독하기는 어렵다. 다만 다른 순수비 3기의 비문으로 미루어 짐작하건대 전반부는 순수의 사적(事蹟)에 관한 것이고, 후반은 수행한 인명(人名)을 열기(列記)한 듯하다.

진흥왕은 553년(진흥왕 14년) 백제로부터 한강 하류지방을 빼앗아 이곳에 신주(新州)를 설치했으며, 555년(진흥왕 16년) 10월에는 몸소 북한산에 순행하여 강역을 획정한 일이 있는데, 그것을 기념해 순수비를 세웠을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산 순수비에는 일척간(一尺干)의 고위 관등을 가지고 있던 내부지(內夫智)의 이름이 새겨져 있으며, 또한 남천군주(南川軍主)의 직명도 나타나고 있어, 신라시대의 인물 및 관직제도 연구에 참고가 된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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