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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운령 진흥왕 순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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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운령 진흥왕 순수비(摩雲嶺 眞興王 巡狩碑)는 신라 진흥왕이 마운령에 세운 순수비로, 본래 함경남도 이원군 동면 운시산(雲施山, 속칭 萬德山) 봉우리 아래에 있었다.

일찍부터 학자들이 주목하여 한백겸(韓百謙, 1552~1615)과 김정희(金正喜, 1786~1856) 등이 언급하였으나 뚜렷한 근거를 제시하지는 못했고, 다만 현지에 살던 강필동(姜必東)이 약간의 기록을 남겼을 뿐이다. 그러다가 1929년 전적조사 일로 현지에 나가 있던 최남선([崔南善, 1890~1957)이 현지 유지들의 협력을 얻어 본격적으로 조사해 학계에 소개하면서부터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비의 재질은 화강암이며, 앞면에는 10행에 행마다 26자, 뒷면에는 8행에 행마다 25자가 각기 새겨져 있으며, 마멸이 심하지 않아 대부분의 글자를 판독할 수 있다.

마운령비는 태창(太昌) 원년(568년, 진흥왕 29년) 진흥왕이 순수했을 때 세워졌는데, 이로써 진흥왕 때 신라의 동북 국경선은 황초령비가 있는 함흥에서 더 멀리 동북쪽까지 진출했었음을 알게 되었다. 비문은 진흥왕의 영토확장과 선정을 칭송한 부분, 변경지역을 두루 순수하고 백성들에게 훈시한 사실, 그리고 진흥왕을 따라 왔던 신료의 관직과 이름을 기술한 부분으로 구성되었다. 내용과 수가인명(隨駕人名)이 황초령비(黃草嶺碑)와 비슷하지만, 마운령비는 결자가 적어 황초령비(黃草嶺碑)의 결락부분을 보완하는 데 도움이 된다.

비문에서는 그곳에 살고 있는 주민들을 모두 민(民)⋅백성으로 표현하고 있으며, 그들 중에서도 나라를 위하여 충절을 다하여 공(功)이 있으면 상작(賞爵)을 더할 것(可加)임을 선언하고 있다. 마운령비에는 다른 순수비에는 보이지 않는 사문도인(沙門道人)⋅집가인(執駕人)⋅이내종인(裏內從人)⋅유인(卣人)⋅약사(藥師)⋅내부통전(奈夫通典)⋅급벌참전(及伐斬典)⋅당래객(堂來客)⋅이내객(裏內客)⋅외객(外客)⋅조인(助人) 등 많은 관직 이름이 보이고 있어 신라의 정치 제도, 특히 국왕의 종자제도(從者制度)를 이해하는데 귀중한 자료이다. 또한 태창이라는 연호의 사용, 6부명, 관직과 관등은 중고기 신라의 정치사 및 제도사를 이해하는 데 기초자료가 되고 있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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