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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소성 싸움(민족기록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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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소성 싸움(민족기록화)은 675년(문무왕 15년) 나당전쟁 중에 신라가 당나라 군대를 맞아 매소성(買肖城)에서 싸워 승리를 거둔 전투를 재현한 민족기록화이다. 오승우(吳承雨) 화백이 그렸으며 전쟁 기념관에 전시되어 있다.

신라는 당나라와 군사동맹을 맺고 연합군을 편성해 660년(태종무열왕 7년)에 백제를 패망시키고, 668년(문무왕 8년)에 고구려를 멸망시켰다. 그러나 당나라가 백제⋅고구려 양국을 직접 지배하려 했으므로 장기간에 걸쳐 전쟁한 대가가 없었다. 더욱이 당나라는 663년(문무왕 3년)부터 신라를 계림도독부(鷄林都督府)로, 문무왕(文武王, 재위 661~681)을 계림주대도독(鷄林州大都督)으로 격하시켜 신라의 자주권마저 빼앗으려 하였다. 이에 신라는 고구려를 패망시킨 뒤, 곧 대당 전쟁을 전개해 전쟁의 정당한 이권과 자주성을 찾고자 하였다.

고구려가 패망한 뒤, 곧바로 고구려의 각지에서 고구려 부흥군이 크게 일어났는데, 그 중의 일파가 검모잠(劍牟岑)⋅안승(安勝)⋅고연무(高延武)가 거느린 당의 저항세력이었다. 670년(문무왕 10년)부터 본격적으로 진행된 나당 전쟁은 673년(문무왕 13년) 무렵 임진강을 경계로 고착상태에 빠졌는데, 이를 타개하기 위해 당은 675년(문무왕 15년) 유인궤(劉人軌)를 계림대총관(鷄林大總管)으로 삼아 대규모 원정군을 편성하였다.

당시 당군은 임진강의 수로를 통해 본국으로부터 보급을 받고 있었는데, 병력의 규모가 거대할수록 식량 보급에 대한 의존도가 높기 마련이었다. 설인귀(薛仁貴, 613~683)의 보급선단이 격침되고 겨울에 접어든 시점에 재보급의 가능성이 희박해지면서 매소성에 주둔하던 이근행(李謹行)의 군대 역시 불안해질 수밖에 없었다. 신라군이 매소성을 공격하자 이근행의 20만 군대는 말 30,380필과 많은 병기를 버리고 북쪽으로 퇴각했다.

매소성 싸움에서의 승리는 나당 전쟁에서 분수령이 되었고, 이로써 신라는 나당 전쟁의 승기를 잡을 결정적 기회를 얻었다. 따라서 매소성 싸움은 당 세력을 한반도에서 축출하고 통일신라가 명실상부하게 한반도 중남부를 장악하는 계기가 되었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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