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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 세발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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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 세발솥은 경상남도 김해 양동리 고분군에서 출토된 유물이다. 청동 세발솥은 원래 음식을 끓이거나 데우는데 쓰는 예기(禮器)이다. 중국에서는 관청이 운영하는 공방에서 제작되는 고급 용기로 상주(商周)시대부터 사용되었으며, 소유자의 신분과 권위를 상징하는 물건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낙랑(樂浪)의 중심지인 평양과 진⋅변한 지역에 해당되는 울산 하대, 김해 양동 유적 등에서 출토되고 있으며, 시기상 대체로 중국 전한(前漢) 시대 세발솥으로 생각된다.

김해 양동리 고분군은 1969년 집중호우 때 일어난 산사태로 당시 중학생들에 의해 청동기 및 철기 시대의 유물이 우연히 발견되었다. 조사 결과 620여 기의 무덤에서 6,000점에 가까운 유물이 출토되었으며, 1990년부터 실시한 발굴조사로 움덧널무덤⋅덧널무덤⋅구덩식돌방무덤⋅독무덤 등이 확인되었다. 이 때 확인된 유물은 동제칼자루끝장식 1점, 동제유운문연방격규구사신경(銅製流雲文緣方格規矩四神鏡) 1점, 철제손칼 1점, 철모 2점, 토기 3점 등이다.

무엇보다도 주목을 받은 유물은 중국의 청동거울과 글씨가 새겨진 청동 세발솥이었다. 청동거울은 지름 20㎝의 정량(精良)한 것으로서 왕망(王莽, 재위 8~24)의 신(新)나라를 중심으로 전한 말에서 후한까지 성행한 형식의 중국 거울이다. 내구(內區)와 외구(外區) 사이에 있는 명대(銘帶)에 ‘상방가경진대구…(尙方佳竟眞大口…)’ 등의 28자가 쓰여 있다.

청동 세발솥은 솥 밑 부분에 명문이 새겨져 있는데, 그 내용은 ‘서구궁(西口宮)에서 쓸 한 말짜리 솥이며 뚜껑을 포함해 무게는 10kg 정도’로 해석이 가능하다. 서구궁은 섬서성(陝西省)의 지명으로 확인되며, 따라서 이 세발솥은 중국 섬서성에서 제작되고 낙랑군을 거쳐 수입되었거나, 낙랑군에서 만들어져 남부지방에 들어온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이러한 형태의 세발솥은 황하 중하류에서 주로 발굴되고 있어 2~3세기 가야와 이 지역과의 교류를 보여주고 있다. 아울러 수입된 이후에는 가야 지역 유력자의 위세를 과시하기 위한 물품으로 세대를 넘어 전래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는 당시 가야 지역에 강력한 지도자가 출현하여 중국의 선진 문물을 수입하였음을 뒷받침하는 것으로, 한반도 남부지방의 삼한 사회가 고대 국가로 발전해 나아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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