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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주군왕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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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주군왕릉(溟州郡王陵)은 신라하대 진골귀족인 명주군왕(溟洲郡王) 김주원(金周元)의 무덤으로,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보광리에 위치한다. 묘역(墓域)은 경사진 언덕에 계단식으로 조성되어 있다. 가장 위에 있는 2기의 묘는 아랫부분에 긴 사각형의 호석(護石)을 둘렀고, 그 앞에 묘비가 서 있다. 묘의 좌⋅우에는 망주석(望柱石), 문인석(文人石), 동물 석상(石像)이 한 쌍씩 마주보며 세워져 있고, 동네의 입구에는 신도비(神道碑)가 자리하고 있다.

김주원은 태종 무열왕(太宗武烈王, 재위 654~661)의 둘째 아들인 김인문(金仁問, 629~694)의 5대손으로 알려져 있으나, 최근 연구에 따르면 무열왕의 셋째 아들인 문왕(文王)의 5대손으로 밝혀졌다. 777년(혜공왕 13년) 그는 이찬(伊飡)으로 시중(侍中)에 임명되었고, 이후 시중에서 퇴임하고서도 병부령(兵部令)을 역임하였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선덕왕(宣德王, 재위 780~785)이 후사가 없이 승하하자, 신하들이 의논하여 김주원을 추대하려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이렇게 김주원은 무열왕의 직계 자손 가운데 가장 강력한 세력을 이루며 유력한 왕위계승자로 거론되었다. 그러나 상대등(上大等) 김경신(金敬信)이 정변을 일으키고 왕위에 올랐는데, 그가 바로 신라 제38대 원성왕(元聖王, 재위 785~798)이다.

김주원은 왕위쟁탈전에 패배하고, 친족세력이 있었던 명주(溟洲)로 물러나 중앙과 대립하는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하였다. 원성왕은 786년(원성왕 2년) 그를 명주군왕(溟州郡王)으로 봉하고, 강릉(江陵)⋅양양(襄陽)⋅삼척(三陟)⋅울진(蔚珍)⋅평해(平海) 등을 식읍(食邑)으로 주었다. 그 뒤 그의 아들 김헌창(金憲昌, ?~822)과 손자 김범문(金梵文, ?~825)이 신라 왕실에 불만을 품고 반란을 일으켰으나 모두 실패로 끝났다.

신라시대에 만들어진 원래의 묘는 실전(失傳)되었고, 조선 선조 때 후손 김첨경(金添慶, 1525~1583)에 의해 복원된 것이 남아 있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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