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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흥덕왕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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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흥덕왕릉(慶州 興德王陵)은 신라 42대 왕인 흥덕왕(興德王, 재위 826~836)의 무덤이다. 경주 흥덕왕릉은 지름 20.8m, 높이 6m의 원형봉토분(圓形封土墳)이다. 호석(護石)에 십이지신상(十二支神像)을 조각하였고, 왕릉 주위에는 돌로 만든 사자상 4개와 문인석(文人石) 및 무인석(武人石) 각각 한 쌍이 있다. 왕릉의 앞쪽으로 능비(陵碑)가 있으나, 현재 귀부(龜趺)만 남아 있고 비신(碑身)과 이수(螭首)는 없어졌다.

흥덕왕은 41대 헌덕왕(憲德王, 재위 809~826)의 동생으로, 이름이 김수종(金秀宗)이었는데 후에 김경휘(金景徽)로 고쳤다. 재위기간에는 지금의 전라남도 완도에 청해진(淸海鎭)을 설치하고 장보고(張保皐)를 대사(大使)로 삼아 서해를 방어하게 함과 동시에 서⋅남해안의 지방호족 세력의 성장을 억압하기도 하였다. 또한 당(唐)으로부터 가져온 차(茶)의 씨앗을 지리산에 심게 하고 재배시켰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 기록된 장지(葬地)와 현재의 위치가 대체로 일치하고, 특히 왕릉 주변에서 ‘흥덕(興德)’이란 명문(銘文)의 비편(碑片)이 발견되어 흥덕왕릉이라는 사실을 추정할 수 있다. 『삼국사기(三國史記)』와 『삼국유사』에는 왕과 왕비를 합장했다고 하는데, 이를 증명하듯 봉분의 규모가 비교적 큰 편이다. 경주 흥덕왕릉은 역대 신라왕릉 중에서 규모가 크고 형식이 완전히 갖추어진 대표적 왕릉이라고 할 수 있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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