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 속 이미지 자료주제별통일 신라와 발해통일신라의 사회

신라촌락문서

※ 가운데 사진을 클릭하시면 이미지 슬라이드를 보실 수 있습니다.

신라촌락문서(新羅村落文書)는 일본 도다이지[東大寺] 쇼소인[正倉院]에 소장되어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문서이다. ‘신라민정문서(新羅民政文書)’⋅‘신라장적(新羅帳籍)’⋅‘신라촌락장적(新羅村落帳籍)’⋅‘신라촌장적(新羅村帳籍)’이라고도 하며, 신라시대 서원경(西原京)의 4개 촌락에 대해 기록한 문서이다.

신라촌락문서는 1933년 10월 일본 도다이지 쇼소인 중창(中倉)에 소장되어 있던 「화엄경론질(華嚴經論帙)」의 파손 부분을 수리하는 과정에서 발견되었다. 책을 보관하기 위해 싸는 덮개인 질(帙)의 내부에 붙어 있던 이 문서는 가로 58cm, 세로 29.6cm 정도의 닥나무로 만든 종이로, 사진 촬영 후에 다시 원상태로 질(帙) 속에 넣어 현재는 사진만이 남아있다.

신라촌락문서는 4개 촌락의 이름[村名], 마을의 영역[村域], 호구의 등급[烟], 인구(人口), 가축[牛馬], 토지(土地), 수목(樹木), 호구(戶口)의 감소, 가축의 감소, 수목의 감소 등의 순서로 기록되어 있다. 이 문서에 기재된 마을의 이름은 사해점촌(沙害漸村), 살하지촌(薩下知村) 등이 있으며, 나머지 2개의 마을 이름은 정확하지 않다. 마을의 영역은 단순히 주거지와 경작지만을 계산한 것이 아니라 주변의 산과 강까지 모두 포함하고 있었다. 호구의 등급은 노동력을 기준으로 9등급으로 나누었으며, 남자뿐만 아니라 여자도 역(役)의 대상으로 기재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인구는 전체 인구수를 비롯한 3년간의 출생, 사망, 이동한 인구를 표기하였으며, 노비의 수도 기록하고 있다. 토지는 논⋅밭⋅마전(麻田) 등의 총면적을 나누어 기재하였다. 수목은 뽕나무, 잣나무, 호두나무 등을 기록한 것으로 나무에서 재배되는 생산품 역시 수취대상이었기 때문에 나무의 숫자를 기록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문서는 3년을 주기로 기록을 작성하여 자료를 갱신하였으며, 삼국통일 후 국가의 부역과 조세수취의 기준을 마련하기 위해 조사가 이루어졌다. 즉, 노동력과 생산자원을 파악하여 그에 합당한 수취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신라 왕실의 의도를 알 수 있다. 2장 밖에 남아 있지 않지만, 국가의 대민지배체제와 농민의 생활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창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