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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순왕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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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천 경순왕릉(漣川 敬順王陵)은 신라 56대 마지막왕인 경순왕(敬順王, 재위 927∼935)의 무덤이다. 무덤은 지름이 7m, 높이는 약 3m 가량의 둥근봉토분[圓形封土墳]으로, 봉분의 아래에는 호석(護石)을 두르고 봉분의 외곽으로 곡장(曲墻)을 배치하였다. 곡장은 고려시대 왕릉에서 처음 나타나는 것으로 고려 왕실에서 왕의 예를 다해 경순왕릉을 조성하였음을 알 수 있다. 봉분의 앞으로 장명등(長明燈)과 망주석(望柱石) 등이 있으며, 가장 앞쪽으로 ‘신라경순왕지릉(新羅敬順王之陵)’이라고 새겨져 있는 단조로운 형식의 비가 세워져 있다. 경순왕릉은 오랫동안 잊혀져 오다가 조선 영조 때 현재의 위치에 있는 것이 확인되었다. 신라 왕릉 중에서 경주지역이 아닌 경기도에 있는 유일한 왕릉이다.

경순왕은 이름은 부(傅)이며, 문성왕(文聖王)의 6대손이다. 아버지는 이찬(伊飡) 효종(孝宗)이며, 어머니는 헌강왕(憲康王)의 딸 계아태후(桂娥太后)이다. 927년(태조 10년) 포석정에서 연희를 즐기던 경애왕(景哀王, ?~927)이 후백제의 견훤의 습격을 받아 시해되자 경순왕은 견훤에 의해 왕위에 올랐다. 견훤보다 왕건에 대해 호의적이었던 경순왕이 935년(태조 18년) 고려에 귀부하자, 태조는 그에게 상보(尙父)라는 존칭을 주어 백관(百官)의 위에 앉혔다. 또한 신라를 고쳐 경주(慶州)라 칭하고 경순왕의 식읍(食邑)으로 주었으며, 그를 경주사심관(事審官)으로 삼았다. 978년(경종 3년) 4월에 승하하였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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