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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주성 백상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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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주성 백상루(安州城 百祥樓)는 평안남도 안주읍 청천강 기슭의 높이 솟은 언덕에 위치한 누각으로, 백상루라는 명칭은 ‘백가지 절경을 볼 수 있는 누각’이라는 뜻이다. 옛 안주성 장대(將臺) 터에 세워 청천강의 자연경치와 잘 어울리는 건물로서 관서팔경(關西八景) 가운데서도 첫째로 꼽혀 ‘관서제일루(關西第一樓)’라고까지 하였다. 백상루는 14세기 고려 충숙왕이 쓴 시에 백상루에 대하여 읊은 구절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 당시보다 훨씬 이전부터 있어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둥근 주춧돌 위로 높이 2m 가량의 기둥을 세워 그 위에 팔작지붕을 올린 기와집으로 중앙의 본채가 있고, 서쪽으로 곁채를 직각으로 붙여 평면이 T자형이다. 지붕의 용마루가 본채가 조금 높고 곁채가 조금 낮게 연결되고 마룻바닥 역시 곁채가 본채보다 조금 낮게 깔았다. 본채는 정면 5칸, 측면 4칸이며, 곁채는 정면 6칸, 측면 2칸이다. 마루 밑기둥에 이어 마루 위에 흘림기둥을 세웠으며, 건물의 중앙에는 기둥을 세우지 않고 중앙부를 강조하였다. 건물의 둘레에는 계자각 난간(鷄子脚欄干)을 설치하고 누각의 마루로 오르는 계단은 본채의 중앙으로 설치하였다. 공포는 2익공으로 구성되었으며 연꽃 장식을 조각하였다. 보의 머리는 용의 모양으로 장식하였으며, 기둥과 서까래 등은 모로단청으로 마무리했다.

고려시대 안주(安州)는 평양과 함께 군사적 요충지이자 교통의 중요한 거점지로 북방진출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곳이었다. 918년(태조 1년) 평양도호부를 설치하여 여진족을 대비하였으나 이후 평양이 서경으로 승격되면서 931년(태조 14년)에 안북부(安北府)로 격을 높였고, 성진(城鎭)을 쌓았다. 983년(성종 2년)이 되어 영주안북대도호부(寧州安北大都護府)로 승격되어 방어사(防禦使)를 두고 북방 개척의 기지로 삼았다. 이후 1018년(현종 9년) 안북대도호부(安北大都護府)로 개칭하였다. 고려 초부터 거란⋅몽고⋅홍건적의 침입이 있을 때마다 서북 군사 요지로 큰 구실을 하였으며, 의종(毅宗, 1127~1173) 때 도절제사영(都節制使營)을 두었다가 파하였다. 1369년(공민왕 18년)에 안주만호부(安州萬戶府)를 두었다가 뒤에 목(牧)으로 승격시켰다.

안주성 백상루는 외적의 침입시 전투를 지휘하는 중요한 장대였고, 안주의 지명 변화를 통해 군사 거점으로서의 중요성을 확인할 수 있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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