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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경입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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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경입비도(拓境立碑圖)는 1107년(예종 2년) 윤관(尹瓘, ?~1111)과 오연총(吳延寵, 1055~1116)이 지금의 함경도 일대의 여진족을 정벌한 뒤, 그 지역에 9성을 쌓고 선춘령(先春領)에 ‘고려지경(高麗之境)’이라고 새겨진 비를 세우는 장면을 담은 기록화이다. 현재 남아 있는 척경입비도는 31×41.2㎝의 규격으로 조선후기에 제작된 『북관유적도첩(北關遺蹟圖帖)』에 수록되어 있다.

그림의 중심으로 인물을 배치하고 왼쪽으로 나무를, 오른쪽으로 원근감을 준 산을 표현하고 있어 단순한 구도가 아닌 한쪽으로 치우친 구도로 표현하였다. 각각의 인물들은 모두 각기 다른 표정과 동작을 취하고 있으며 매우 가는 선으로 손가락을 표현하는 등 세밀한 묘사가 일품이다.

발해의 멸망 이후 여진족은 만주지역과 고려의 동북지역에서 거주하였다. 고려에 인접해 있던 여진족들은 고려를 ‘부모의 나라’로 섬겼고, 고려는 귀화해오는 여진족에 관작이나 물품을 주어 환대하였다. 이후 문종대에 이르러 여진족이 고려의 군현에 편제되기를 청해 오자, 고려는 길주 이남 지역에 군현을 편제하여 주었다. 그러나 점차 세력을 키워가던 완안부(完顔部)에게는 위협적으로 느껴졌다. 1104(숙종 9년) 완안부의 부하 오아속(烏雅束)이 군사시위를 벌이면서 고려와 여진족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이에 고려는 두 차례 군대를 출병하였으나 실패하였다. 이후 1107년 윤관을 원수로, 오연총을 부연수로 하여 별무반 17만명을 보내어 이전의 패전을 설욕하고 잃어버린 땅을 수복하고자 하였다. 윤관의 군대는 출정 30일 만에 옛 땅을 수복하였고, 그 지역으로 4개의 성을 축조하였다. 이듬해 더욱 북상하여 5개의 지역에 성을 쌓아 동북 9성을 쌓아 경계를 강화하였다.

그러나 세력을 키운 여진족은 만주족을 장악하고 국호를 금으로 하여 나라를 건국한 뒤, 1125년 거란을 멸망시키고, 1127년 중국 대륙을 장악하였다. 이후 고려에 대해 군신의 예를 요구하였고, 이자겸이 금의 요구를 받아들이면서 9성을 반환하는 등 윤관의 북방진출은 사실상 실패로 마무리되었다.

척경입비도는 고려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역사 기록화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으며, 고려 시대 대외 원정 및 영토 확장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보여주고 있어 그 가치가 크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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