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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양수 홍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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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양수 홍패(張良守 紅牌, 국보 제181호)는 1205년(고려 희종 1년, 금 장종 태화 5년) 진사시(進士試) 병과(丙科)에 급제한 장양수(張良守)에게 내린 과거 급제 증명서이다.

홍패의 크기는 가로 93.5㎝, 세로 45.2cm로, 황색(黃色) 마지(麻紙) 두루마리에 행서(行書)와 초서(草書)로 내용을 적었다.

고려시대의 홍패는 중국 송나라 제도에서 형식을 받아들여 기록하였는데, 급제자의 이름과 급제의 구분, 연대, 시관(試官) 등이 기록되어 있다. 1102년(숙종 7년) 을과급제자에게 홍패와 안마(鞍馬)를 주었다고 하는 기록이 최초의 예이다. 실물로 남아 있는 홍패는 1205년 장양수 홍패와 1305년(충렬왕 31년) 장계 홍패 및 장말손 백패⋅홍패(張桂 紅牌 및 張末孫 白牌⋅紅牌, 보물 제501호)가 있다.

장양수는 생몰연대가 확실하지 않으나 고려후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문신으로, 울진부원군(蔚珍府院君) 문성공(文成公) 말익(末翼)의 8세손(世孫)이며, 고려 개국공신(開國功臣) 태사(太師) 장정필(張貞弼)의 12세손(世孫)이다. 1181년(희종 원년) 을축에 유시(儒試)에 합격하여 봉익대부(奉翊大夫) 추밀원부사(樞密院副使) 전리판서(典理判書) 상호군(上護軍)을 역임하였다.

홍패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右人張良守 貢院所▨▨ 判乙以點 敎可丙科及第 牒至准敎故牒 泰和五年乙丑四月日牒 金紫光祿大夫參知政事太子少傅 王 門下侍郞平章事寶文閣太學士同修國史柱國判戶部事 任 門下侍郞同中書門下平章事吏部尙書上柱國上將軍判兵部御史臺事 崔 門下侍郞同中書門下平章事上柱國上將軍監修國史判禮部事 奇 門下侍郞同中書門下平章事修文殿太學士監修國史上柱國判吏部事 崔"

내용 중에는 고시(考試)에 참여했던 사람의 관직과 성이 열기되어 있다. 예를 들어 “판호부사 임(判戶部事 任)”은 임유(任儒)가 당시 여러 번 지공거(知貢擧)를 역임한 사실을 알 수 있으며, 『고려사』 선거지에도 이와 같은 기록이 있어 당대 유물로 판단할 수 있다. 또한 “판병부어사대사 최(判兵部御史臺事 崔)”는 최충헌, “판예부사 기(判禮部事 奇)”는 기홍수(奇洪壽)이며, “판이부사 최(判吏部事 崔)”는 최선(崔詵)으로 확인된다. 또한 홍패에 적힌 글씨를 통해 당시의 서풍(書風)을 알 수 있다.

장양수 홍패는 지금까지 전해지는 문서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고려시대 유교의 제도적인 정착과정과 과거 제도를 연구하는 데에 귀중한 자료이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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