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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장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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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장산성(龍藏山城)은 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 용장리의 용장산의 기슭에 위치한 산성으로, 석축의 일부가 잔존하며 성의 내부에는 용장사지(龍藏寺址)와 행궁지(行宮址)가 남아 있다. 용장산성은 목포대학교박물관을 중심으로 1989년, 2004년, 2010년 등 3차례 발굴조사가 이루어졌으며, 2010년 3차 발굴조사 결과 고려 왕궁지의 전체 윤곽을 확인하였다.

용장산성은 내벽과 외벽의 전 구간을 돌을 이용하여 쌓은 석축성이다. 내부의 건물지는 행궁지로 추정되며, 양쪽과 중앙으로 회랑이 있고 전면에 두 건물지가 있으며 회랑과 건물의 바닥에는 보도가 깔려 있다. 서쪽의 문지에는 정면 1칸, 측면 2칸의 규모로 문루 주출돌이 남아 있다.

용장산성은 배중손(裵仲孫, ?~1271)이 이끈 삼별초가 고려 정부군과 몽고군의 연합군에 대항하면서 제주도로 근거지를 옮기기 이전 8개월간 머무르면서 전투를 벌인 곳이다.

1232년(고종 19년) 강화천도 이후, 몽고의 여러 차례 침입에 강경 입장을 고수하였던 최씨 정권이 무너지면서 1270년(원종 11년) 6월 고려 왕실은 개경으로 돌아가면서 몽고군에 항복하게 된다. 이때 최씨 정권의 사병과 같은 역할을 했던 삼별초(三別抄)는 고려 정부분에 반기를 들고 끝까지 대몽항쟁을 할 것을 주장한다. 해산 명령을 받은 삼별초는 이에 굴복하지 않고 진도의 용장산성으로 근거지를 옮겨 저항하였다. 삼별초는 배중손의 지도하에 궁궐과 성곽을 쌓고 몽고군과 고려 정부군에 반기를 들고 승화후 온(承和侯溫, ?~1271)을 왕으로 추대하여 왕실과 대립되는 정권을 세웠다.

1271년(원종 12년) 5월 고려 정부군은 김방경(金方慶, 1212~1300) 등 몽고군과 연합군을 결성하여 삼별초의 용장산성을 공격하였고, 남도석성으로 이동하여 마지막 항전을 하였지만 연합군에는 역부족이었다. 김통정(金通精, ?~1273)을 중심으로 한 삼별초의 잔여 세력은 진도를 떠나 제주도로 근거지를 옮겼다. 근거지를 옮긴 삼별초는 1273년(원종 14년)까지 제주도에서 그 세력을 유지하다가 고려 정부군과 몽고군의 연합군 공격으로 소멸하게 된다.

용장산성은 남도석성(南桃石城)과 더불어 삼별초 대몽항쟁의 대표적인 유적지이다. 또한 축성연대가 확실하고, 고려왕실과 대립되는 궁전이 건립되었다는 점에서 중요한 가치가 있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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