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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고습래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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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고습래회사(蒙古襲來繪詞)는 1274년과 1281년 두 차례에 걸친 여몽연합군의 일본 원정을 자세하게 묘사한 그림이다. 그러나 당시 일본군을 지휘하던 가마쿠라 막부(鎌倉幕府)의 무사 다케자키 스에나가(竹崎季長, 1246~?)가 자신의 공을 과시하기 위해 제작한 것이니 만큼 사실과는 다소 차이가 있는 편이다.

그림에 나타난 고려군과 몽고군은 현저히 다르게 표현되었다. 고려군은 점선이 있는 갑옷을 입고 있으며 투구를 쓰고 양쪽 귀에 털로 만든 귀가리개를 하고 있다. 반면 몽고군은 갑옷을 입고 목과 턱까지 오는 투구를 쓰고 있다. 또한 일본군은 긴 화살을 쏘며 말을 타고 달리고 있다. 그림에서도 나타나듯이, 고려군은 최전방에서 일본군과 대적하여 활을 쏘며 용맹함을 뽐내고 있으며, 몽고군과 달리 고려군의 얼굴을 도깨비와 유사하게 표현한 것도 당시 일본군이 고려군을 무서워하고 있었다는 표현일 것이다.

그림에 등장하는 선박은 닻을 감는 닻줄 물레가 있는 것으로 보아 고려의 배로 보고 있다. 배의 앞⋅뒷면 역시 평평하게 막는 것이 고려배의 특징을 따르고 있다.

몽고군은 고려와의 전쟁을 승리로 마감하고 강화가 성립됨에 따라 일본원정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당시 몽고의 세조는 일본에게 항복을 권유하였으나, 일본 정부에서 이에 불응하자 무력을 동원한 대규모 병력을 파견하게 된다.

1270년(원종 11년) 합포(현재 마산)를 기지로 일본 정벌을 위한 군사 활동을 준비하였다. 전합의 건조와 군량문제가 해결되자 1274년(원종 15년) 1차 원정을 단행하였다. 몽고군 2만 명과 고려군 8천 명은 물론 여진족과 한족을 포함한 4만 이상의 병력과 전함 900척의 규모였다. 합포를 떠나 쓰시마[對馬島]를 공략하고 이키시마[壹岐島]를 거쳐 기타큐슈[北九州]의 하카타만[博多灣]에까지 이르렀다. 여몽연합군은 새로운 무기와 전투 전법으로 일본군을 격파하였다. 일본과 남송의 고리를 끊고자 했던 몽고군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 군대를 거두어들였다. 그러나 일본군의 저항과 마침 불어온 태풍으로 인해 여몽연합군의 피해가 속출하여 1차 원정은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1차 원정의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 1281년(충렬왕 7년) 여몽연합군은 몽고군 3만 명과 고려군 1만 명, 남송군을 포함한 10만 이상의 병력과 900척의 전함을 이끌고 일본 정벌에 나섰다. 그러나 1차 원정 당시 여몽연합군의 위력을 실감했던 일본군은 여몽연합군의 공격에 맞서기 위해 성벽을 쌓고 병사들을 모으는 등 철저하게 준비했다. 이때 예상하지 못한 태풍이 불어오면서 당황한 여몽연합군의 병사들은 수장되고 선박은 대부분 파괴되면서 2차 원정도 실패하고 말았다.

몽고습래회사는 당시 전투 모습을 생생하게 담고 있어 전술과 무기, 복식 등을 연구하는데 좋은 자료가 된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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