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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무선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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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무선 초상(崔茂宣 肖像)은 고려 후기 무신이었던 최무선(崔茂宣, 1325~1395)의 반신상을 그린 초상화이다.

그림의 크기는 가로 88cm, 세로 135cm이다. 머리에는 사모를 쓰고 있으며 짙은 눈썹과 선명한 눈, 그 아래로 코와 굳게 다문 입, 수염을 자세하게 그려 놓았다. 푸른색의 옷을 입고 있으며 옷주름은 간략하면서도 자연스럽게 표현하였다. 허리에는 관대를 차고 있으며, 두 손은 옷 안으로 잡고 있다.

최무선은 고려 말 왜구의 침입으로 백성들의 생활이 피폐해지자 화약과 화약한 무기를 만들어 왜구를 격퇴하고자 하였다. 중국 강남지방에서 온 이원(李元)이라는 사람에게 화약을 만드는 법을 전수받아, 화약 제조에 성공하였다. 1377년(우왕 3년) 10월 화통도감(火筒都監)을 설치하고 본격적인 화약무기 연구에 집중하였다. 이후 화통도감에서는 대장군(大將軍)⋅이장군(二將軍)⋅삼장군(三將軍)⋅육화석포(六火石砲)⋅화포(火砲)⋅신포(信砲)⋅화통(火筒) 등의 총포와 화전(火箭)⋅철령전(鐵翎箭)⋅피령전(皮翎箭) 등의 발사물, 그 밖에 질려포(疾藜砲)⋅철탄자(鐵彈子)⋅천산오룡전(穿山五龍箭)⋅유화(流火)⋅촉천화(觸天火), 로켓무기와 같은 주화(走火) 등 총 18가지의 각종 화기를 개발하였다.

1380년(우왕 6년) 500여척의 군선을 이끌고 진포에 왜구가 침입하자, 최무선은 해도원수(海道元帥) 나세(羅世, 1320~1397), 심덕부(沈德符, 1328~1401)와 함께 군선 100여척을 이끌고 왜구를 진압하러 나갔다. 이때 고려군은 군선의 수에서 일본군에 비해 아주 열세였지만, 최무선이 발명한 화포를 주무기로 활용하여 집중 공격하여 왜구의 선박 500척을 모두 불살라버리는 등 왜구를 격파하였다. 진포대첩의 승리로 그는 지문하부사(知門下府事)이라는 벼슬까지 올랐다.

최무선 초상은 고려말 관복의 모습을 알 수 있게 해 준다는 점에서 사료적 가치를 높이 평가할 수 있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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