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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포대첩 기념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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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포대첩 기념탑(鎭浦大捷 紀念塔)은 우리나라 최초로 화약을 이용한 함포로 왜구 500여 척을 무찌른 최무선(崔茂宣, 1325~1395)의 진포대첩을 기리기 위해 세운 탑이다. 금강호 시민공원의 중앙광장에 위치하며 높이 17.9m의 화강암으로 제작되었다. 돛을 상징하는 탑은 두 개의 날개 모양으로 하늘을 향해 솟아있는 형상이다. 두 조형물이 만나는 가장 높은 곳에서는 화포를 하늘을 향해 겨누고 있어 진포대첩에서 왜구를 격파한 고려군의 호국정신을 계승하고자 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진포대첩은 1380년(우왕 6년) 8월 부족한 식량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500여척의 군선을 이끌러 금강 하류인 진포(鎭浦)를 거점으로 왜구가 침입하자, 고려의 수군이 왜구를 격파한 해상 전투이다.

고려시대의 왜구는 1223년(고종 10년) 처음 고려를 침입하여 이후 5년에 걸쳐 7차례를 경상도와 전라도 해안지역에서 노략질을 자행하였지만, 큰 문제는 되지 않았다. 그러나 1350년(충정왕 2년)부터 왜구의 침입이 급격하게 늘어나 115회에 달했고, 우왕 연간(1375~1388)에는 278회에 이르렀다. 일본의 남북분단으로 전란이 지속됨에 따라 자신들의 생활환경이 피폐해지자, 눈을 고려로 돌려 노략질을 자행하게 된 것이다.

1380년 500여척의 군선을 이끌고 진포에 침입한 왜구는 무차별적인 약탈을 시작하였다. 이에 고려 정부에서는 군선 100여척과 함께 해도원수(海道元帥) 나세(羅世, 1320~1397), 심덕부(沈德符, 1328~1401), 최무선이 지휘하는 고려군을 파견하여 왜구를 진압하게 하였다. 고려군은 군선의 수에서 열세였지만, 최무선이 발명한 화포를 주 무기로 활용하여 집중 공격하여 왜구의 선박 500척을 모두 불살라버렸다.

진포대첩은 고려에서 자체적으로 제작한 화포와 화통 등의 무기를 사용하여 공격한 최초의 해상전투로 이를 기반으로 왜구 토벌에 큰 기여를 하였다는 것에 의의가 있다. 또한 진포대첩의 승리를 계기로 왜구의 침입이 점차 줄어다는 점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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