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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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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국사(興國寺)는 개성시 만월동에 위치하며,『삼국유사』에 의하면 924년(태조 7년)에 창건되었다. 흥국사에는 고려의 명장 강감찬(姜邯贊, 948~1031)이 이름을 짓고 찬(撰)하였다고 전하는 오중탑(五重塔)이 있었다고 한다. 1021년(현종 12년)에 건립된 이 탑 속에는 강감찬의 제시(題詩)와 사탑고적고(寺塔古蹟攷)가 있었다고 한다. 오중탑 속에 있었던 사탑고적고를 통하여 흥국사 위치가 지금의 개성직할시 만월동임을 확인할 수 있다. 고려 태조 초기에 창건된 사찰들은 대부분 개경의 궁궐 주변이나 송악산에 위치하였다. 태조개경 주변에 세운 사찰에서 팔관회(八關會), 연등회(燃燈會) 등 중요한 불교행사를 주관하게 하였다. 이러한 사찰 중심의 불교 행사는 아직 정비되지 않은 궁궐과 정치적인 제도를 보완하고자 하는 기능을 내포하고 있었다.

흥국사는 1046년(문종 즉위년) 문무백관이 이 절에 모여 국가의 안녕을 비는 대법회를 가진 이래, 이곳에서 각종 도량(道場)을 여는 것을 항규(恒規)로 삼은 이후 고려 말기까지 팔관회, 연등회, 각종 도량 및 기우제 등이 열렸고, 불은사(佛恩寺)⋅국청사(國淸寺) 등과 더불어 고려시대에 가장 중요하였던 국찰(國刹) 가운데 하나이다.

흥국사는 고려 무신 정권기에 만적(萬積, ? ~1198)이 난을 일으킨 곳으로도 유명하다. 최충헌(崔忠獻, 1149~1219)의 사노(私奴)였던 만적은 흥국사에 모인 사노들을 선동하여 자신의 상전을 죽인 뒤, 노비문서를 불태워 버리고, 노비해방운동을 도모하여 자신들이 조정을 집권하려 하였다. 그러나 율학박사(律學博士) 한충유(韓忠愈. ?~?)의 사노 순정(順定, ?~?)이 이 계획을 상전에게 밀고하여 거사 전에 발각되었다. 이리하여 만적을 비롯한 수백 명의 노예들이 체포되어 모두 강물에 던져져 죽음을 당하였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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