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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도사 국장생 석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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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 통도사 국장생 석표(梁山 通度寺 國長生 石標)는 통도사를 중심으로 12곳에 세운 국장생표 중의 하나로, 통도의 동남쪽 약 4㎞ 가량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이러한 국장생표는 사찰의 경계를 나타내는 표시이자, 고려시대 사찰 소유 토지의 경계를 나타내는 표식 중 하나이다. 국장생이란 국가의 명령으로 건립한 장생이란 것으로, 수호신, 이정표, 경계표를 비롯한 풍수사상과 민속신앙과도 결합되어 방액의 구실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통도사 국장생 석표는 높이 1.62m, 너비 57㎝이며, 화강암으로 제작되었으나 자연 석면을 그대로 이용하였다. 석표의 앞면에는 通度寺孫仍川國長生一坐段寺 所報尙書戶部乙丑五月日牒前 判兒如改立令是於爲了等以立 太安元年乙丑十二月日記(통도사손잉천국장생1좌단사 소보상서호부을축5월일첩전 판아여개입영시어위료등이립 태안원년을축12월일기)의 내용이 6~10㎝ 정도 크기의 해서체로 음각되다. 명문 내용을 분석해 본 결과, 나라의 통첩을 받아 세웠다는 내용으로 1085년(고려 선종 2년)에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이두문(吏讀文)이 명문 중에 섞여 있어 646년(신라 선덕여왕 15년) 통도사가 창건된 이후에도 이와 유사한 형태의 석표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통도사 국장생 석표 이외에도 1085년에는 경남 밀양시 무안면 무안리와 울산광역시 울주군 삼남면 상천리에도 국장생 석표를 세웠다.

고려시대에는 사찰에 지급되는 사원전(寺院田)이 따로 있었다. 사원은 전시과(田柴科)의 규정에 따라 분급된 토지 외에도 왕의 기증, 신도들의 시납(施納)으로 막대한 토지를 소유할 수 있었으며 사원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경우가 많아 사찰의 노비나 예속 농민에 의한 경작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사원전은 면세(免稅)⋅면역(免役)의 특권이 있어 사찰의 대토지화를 가속화시키기도 하였다. 이러한 사원전의 경계이자 소유권을 나타내는 것이 국장생표인 것이다.

통도사 국장생 석표는 당시 사찰과 국가와의 관계를 알려줄 뿐 아니라, 이두문(吏讀文)이 함께 적혀 있는 금석문(金石文)으로서 자료적 가치가 매우 높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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