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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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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릭은 웃옷과 주름잡힌 치마를 별도로 제작하여 허리부분에서 연결한 형태의 옷이다.

고려는 1231년부터 몽고의 침입을 받아 1270년에 완전히 복속(服屬)되었다. 이후 14세기 후반 공민왕의 반원정책이 실시되기 이전까지 약 100년간 원의 정치적 간섭을 받게 되었으며, 원 왕실과의 혼인을 비롯한 많은 교류가 이루어졌다. 이에 따라 원의 풍속이 고려에 영향을 주게 되었으며, 특히 상류계층을 중심으로 원의 풍습이 유행을 하게 된다. 철릭 역시 이 당시 유입된 것으로 판단된다.

원종(元宗, 재위 1259~1274) 때 원나라에 가 있던 세자 심(諶)이 처음 받아들인 변발(辮髮)과 호복(胡服)은 당시 가장 유행했던 몽고 풍속 중 하나이며, 왕비들은 고고(姑姑)라고 하는 몽고식 모자를 썼다. 또한 왕실이나 관리들은 수 천 필의 포(布)로 만든 꽃과 기타 여러 가지 물건으로 장식한 보르차연(孛兒扎宴)이라는 몽고식 연회를 열어 춤과 노래로 즐기곤 하였다.

홀치(忽赤)⋅속고치(束古赤)⋅조라치(照刺赤)⋅아막(阿幕) 등 관제에도 몽고식의 용어가 사용되기도 하였으며, 임금의 진짓상을 수라상(水刺床), 말의 끝에 ‘아치’ 또는 ‘치’라고 붙는 것 또한 몽고어의 영향이다.

민간에서 여자들은 예식에서 족두리를 쓰거나 귀고리를 하고 뺨에 연지를 찍는다던지, 남녀가 옷고름에 차는 장도라던지, 머리를 땋을 때 다리는 넣는 것, 쪽진 머리 옆으로 길게 늘어뜨린 댕기를 다는 것은 몽고에서 온 풍습이다.

14세기 후반 공민왕의 반원정책 실시로 변발과 호복 등의 몽고풍습이 금지되긴 하였지만, 일부는 아직까지 민간에서 살펴 볼 수 있다.

철릭은 고려 후기 몽고의 영향을 받아 유입되어 이후 조선시대에 여러 계층에서 다양하게 이용되었고 특히 조선 중기 이후 무관의 옷으로 통용되었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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