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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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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景福宮)은 조선 건국 후 한성(한양)에 세워진 조선의 정궁(正宮)으로, 1963년에 사적 제117호로 지정되었다.

태조(太祖) 이성계(李成桂, 1335~1408, 재위 1392~1398)가 조선을 건국하고 수도를 한성으로 옮긴 후 즉위 3년째인 1394년에 신도궁궐조성도감(新都宮闕造成都監)을 열고, 청성백(靑城伯) 심덕부(沈德符), 좌복야 김주(金湊), 전 정당문학(前政堂文學) 이염(李恬), 중추원학사 이직(李稷) 등을 판사에 임명하여 실무를 담당하게 하였다. 그리고 지금의 경복궁 자리에 터를 잡고 궁의 창건을 시작하여, 이듬해에 완성하였다. 도성의 북쪽에 있다고 하여 북궐(北闕)이라고도 불린 경복궁은 『시경(詩經)』 주아(周雅)에 나오는 “이미 술에 취하고 이미 덕에 배부르니 군자 만년토록 그대의 큰 복을 도우리라(旣醉以酒 旣飽以德 君子萬年 介爾景福).”에서 마지막 두 자인 ‘경복’을 따서 이름을 지었다.

경복궁의 위치는 한양의 북쪽 북악산 기슭으로, 풍수지리설에 입각하여 주산(主山)인 북악산 바로 아래에 자리하고 있다. 궁의 전면으로 넓은 시가지가 전개되고 그 앞에 안산(案山)인 남산이 있으며 내수(內水)인 청계천과 외수(外水)인 한강이 흐르는 명당(明堂)이다. 궁의 왼쪽에 종묘(宗廟)가 있고 궁의 오른쪽에 사직단(社稷壇)이 배치되어 있는데, 이는 중국 고대부터 이어져 오던 도성의 건물 배치 기본 형식인 좌묘우사(左廟右社)에 따른 것이다. 또한 건물의 배치 역시 기본 형식인 전조후침(前朝後寢)을 따라 정전과 편전들은 앞에 놓고, 침전과 후원은 뒤에 놓았는데, 이것은 조선 시대의 다른 궁궐들이 정전과 침전을 좌우에 놓거나 혹은 배치에 있어 앞뒤의 관계가 불분명한 것과 분명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정종(定宗, 1357~1419, 재위 1398~1400)이 도읍을 개성(開城)으로 바꾸면서 경복궁은 잠시 비어져 있었으나, 태종(太宗 1367~1422, 1400~1418)의 한양 환도로 다시 정궁으로 이용되었다. 태종은 궁내에 경회루(慶會樓)를 지었는데, 연못을 넓게 파고 장대한 누각을 지어 임금과 신하가 모여 잔치를 하거나 사신을 접대하도록 하였으며, 파낸 흙으로는 침전 뒤편에 아미산(蛾眉山)이라는 동산을 만들었다. 1553년(명종 8년)에는 강녕전(康寧殿)에 불이 나서 근정전(勤政殿) 북쪽의 전각 대부분이 소실되었으나, 이듬해에 강녕전을 비롯하여 교태전(交泰殿)⋅연생전(延生殿)⋅흠경각(欽敬閣)⋅사정전(思政殿)이 복구되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1592년 임진왜란(壬辰倭亂)으로 궁은 전소되고 말았다. 궁을 다시 복구하는 문제는 임진왜란이 끝난 직후부터 논의되었는데, 선조(宣祖, 1552~1608, 재위 1567~1608)는 광화문과 근정전 등 주요건물들이라도 지을 계획을 세웠으나, 전쟁 직후 경제적 어려움을 이유로 대신들이 나중에 추진할 것을 주장하며 만류하였다. 이후 광해군(光海君, 1575~1641, 1608~1623)도 복구를 시도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경복궁이 중건된 것은 고종(高宗, 1852~1919, 1863~1907) 대인 1867년(고종 4년)으로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 이하응(李昰應, 1820~1898)의 주도하에 이루어졌다. 그 규모는 7,225칸 반이며, 후원에 지어진 전각은 융문당(隆文堂)을 포함하여 256칸이고, 궁성 담장의 길이는 1,765칸이었다. 경복궁이 완성되자 고종은 1868년에 거처를 경복궁으로 옮겼다. 그러나 1895년에 명성황후(明成皇后)경복궁 안에서 시해되면서, 이듬해인 1896년 고종은 러시아공관으로 거처를 옮겼고, 이로써 경복궁은 다시 빈 궁궐이 되었다.

이후 국권을 강탈한 일본인들은 궁 안의 전(殿)⋅당(堂)⋅누각 등 4,000여 칸의 건물을 헐어서 민간에 팔았으며, 1917년 창덕궁(昌德宮)의 내전에 화재가 발생하자 경복궁의 교태전⋅강녕전⋅함원전(含元殿)⋅만경전(萬慶殿)⋅흥복전(興福殿) 등을 철거하여 그 재목으로 창덕궁의 대조전(大造殿)⋅희정당(熙政堂) 등을 지었다. 따라서 궁전 안에는 간신히 근정전⋅사정전⋅수정전(修政殿)⋅천추전(千秋殿)⋅집옥재(勤政門)⋅경회루와 근정문(勤政門)⋅홍례문(弘禮門)⋅신무문(神武門)⋅동십자각(東十字閣) 등만 남게 되었다. 아울러 정문인 광화문(光化門)도 건춘문(建春門) 북쪽으로 이건하였을 뿐만 아니라, 총독부청사를 지어 근정전을 완전히 가려 버렸다.

총독부 청사는 1945년 광복 후 정부종합청사로 활용되다가, 1986년부터는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사용되었다. 그런다가 1990년부터 2010년까지 경복궁 1차 복원 공사가 침전(寢殿)⋅동궁(東宮)⋅흥례문(興禮門)⋅태원전(太元殿)⋅광화문 등 5개 권역으로 나누어 5단계로 진행되었고, 이러한 가운데 1995년 8⋅15 광복 50주년을 맞이하여 구 총독부 청사 등이 철거되었다. 그리고 2011년부터는 경복궁 2차 복원 공사가 침전⋅궐내각사(闕內各司)⋅동궁⋅후원(後園)⋅오위도총부(五衛都摠府)⋅선원전(璿源殿) 권역으로 나누어 6단계에 걸쳐 실시되고 있다.

경복궁은 세월을 거치면서 궁내의 건물들 대부분이 없어져서 근정전과 경회루를 제외한 많은 전각들이 복원된 상태로 존재하지만 창건 때의 위치를 지키고 있어 조선왕조 정궁의 면모와 위엄을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이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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