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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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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례문(崇禮門)은 서울 도성의 정문으로 도성의 사대문 중 남쪽에 있어서 남대문(南大門)이라고도 불리며, 1962년 국보 제1호로 지정되었으나, 2008년 2월에 발생한 화재로 소실되어 2012년 12월 복구되었다.

1396년(태조 5년) 서울 도성의 정문으로 축조된 숭례문은 1398년 2월에 준공되었다. 이후 1447년(세종 29년) 개축 공사를 실시하였으며, 이어 1497년(성종 10년)에는 대대적인 중수 공사가 이루어졌다. 정면 5칸, 측면 2칸의 규모이며, 중측의 우진각 지붕의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화강암으로 구축한 홍예형(虹霓形)의 누기(樓基)와 마름석축으로 이루어진 기층의 중앙에 홍예문(虹蜺門)이 있으며 판문에 철갑을 씌운 두 짝의 문이 달려 있다. 석축기단 위에는 전돌로 쌓은 여장(女墻)을 돌렸으며, 양측에는 원래 성벽이 연결되어 있었으나 1908년 길을 내기 위해서 헐었다. 그리고 기단의 동서 양쪽에 협문을 한 개씩 두어 계단을 통하여 오르내릴 수 있게 하였으며, 홍예문의 앞뒤 담 밑에는 4개의 석루조(石漏槽)를 설치하였다.

숭례문 내부의 아래층 바닥은 대부분이 흙바닥으로 되어 있고 위층은 널마루이다. 기둥은 모두 굵직한 두리기둥인데 기둥머리에는 키가 큰 창방(昌枋)을 걸었으며 그 위에 널찍하고 두툼한 평방(平枋)을 돌리고 공포를 올렸다. 지붕은 우진각 지붕으로 되어 있는데, 아래위층 모두 겹처마로 사래 끝에는 토수(吐首)를 씌우고 추녀마루에는 잡상(雜像)과 용두(龍頭)를 올려놓았으며, 용마루 양끝에는 취두(鷲頭)를 올렸다.

편액(扁額)과 관련하여 이수광(李睟光)은 ≪지봉유설(芝峰類說)≫에서 양녕대군(讓寧大君, 1394~1462)이 쓴 것이라고 기록하였으나, 여러 가지 이설(異說)이 전해지고 있다. 한편 숭례문의 ‘禮(예)’ 자(字)는 오행에 배치하면 불[火]이 되고 오방(五方)에 배치하면 남쪽을 지칭하는 말이 된다. 그리하여 사대문의 다른 문들이 편액을 가로로 쓴 것과 달리 숭례문의 편액은 불꽃[炎]을 의미하는 숭례의 두 글자가 경복궁을 마주보는 관악산의 화기를 막게 하기 위해서 세로로 썼다고 전해진다.

숭례문은 조선 전기의 전형적인 다포양식의 건물로 창건 연대를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견실한 목조 건축물의 수법을 보이고 있는 한국 건축사상 중요한 건물의 하나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2008년 2월 10일 방화(放火)로 기반 석축의 일부만을 남긴 채 소실되었다. 이에 곧 복구 공사를 실시하여 2012년 말 완공하였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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