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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성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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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성도(都城圖)는 한양의 전경(全景)을 회화식 지도로 표현한 작품으로, 크기는 가로 91.5㎝이고, 세로 67.3㎝이다.

한양은 조선의 수도로, 현재의 서울을 말하는데, 한강과 김포평야를 끼고 있다. 그리하여 삼국 시대에는 한양을 쟁탈하기 위하여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으며, 고려시대에는 풍수지리설에 따라 남경(南京)이라 부르고 궁궐을 짓기도 하였다. 그런 가운데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李成桂, 1335~1408, 재위 1392∼1398)가 풍수지리에 정통한 무학대사(無學大師, 1327~1405)로 하여금 천도 지역을 물색케 하면서 새로운 수도로 한양이 결정되었다. 이에 1394년(태조 3년) 한양으로 천도를 하였으나, 1399년(정종 1년) 정종(定宗, 1357~1419, 재위 1398~1400)이 동생 이방원(李芳遠, 1367~1422, 재위 1400~1418)의 세력을 견제하고자 다시 개경(開京)으로 수도를 옮겼다. 그러나 이방원태종으로 즉위하면서 다시 한양으로 수도를 옮겼고, 이후 한양, 즉 서울은 수도의 지위를 잃은 적이 없다.

『도성도』는 도봉산과 북한산을 전체적인 배경으로 하고, 백악산(白岳山)과 인왕산(仁王山), 목멱산(木覓山), 타락산(駝駱山) 등의 내사산(內四山)을 중심으로 하여 서울을 산수화풍으로 그려내고 있다. 상당히 빼어난 작품인데다가, 매우 자세하다는 특징까지 가지고 있다. 한편 이 지도는 남쪽을 향하여서 정사를 보는 임금의 시각에 맞추어 구성되었는데, 남쪽을 상단에, 북쪽을 하단에 배치하였다. 도성 안의 지명들이 자세히 적혀 있으며, 여백에는 행정 구역과 도성의 크기, 그리고 도로 상황 등이 기록되어 있다. 그린 사람 및 시기에 대해서는 밝혀진 바가 없으나, 정조(正祖, 1752~1800, 재위 1776~1800) 대에 도화서에서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이 「도성도」는 여러 면에서 주목할 만한데, 우선 도로와 하계망은 김정호(金正浩, ?~1866)가 작성한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의 「도성도」보다 더 자세하다. 또한 일반적인 산수화에서 사용하는 화면 구성 및 필법, 준법, 수지법, 채색 등의 기법을 충실하게 구사하는 동시에 18세기에 유행한 정선(鄭敾, 1676~1759)진경 산수화풍을 따르고 있는데 회화성 역시 탁월하다.

2008년 보물 제1560호로 지정되었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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