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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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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릉(英陵)은 세종(世宗, 1397~1450, 재위 1418~1450)과 그 부인 소헌왕후(昭憲王后, 1395~1446)의 무덤으로 조선 최초의 합장(合葬) 무덤이다.

세종은 조선의 4대 왕으로 정치, 제도, 문화, 경제, 외교 등 다방면에서 업적을 남겨 조선 시대 가장 훌륭한 왕으로 꼽힌다.

1446년(세종 28년)에 소헌왕후가 죽자 당시 광주 서강(西岡)에 쌍실 무덤인 영릉을 만들었다. 동쪽 방은 왕후의 무덤으로 삼고, 서쪽 방은 왕의 무덤으로 미리 마련하였다가, 1450년(문종 즉위년)에 세종이 죽자 합장하였다. 이는 한 봉우리에 서로 다른 2개의 방을 갖추고 있는 형태로, 조선 왕릉 최초의 합장 무덤이다. 무덤 배치는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치장조(治葬條)에 따라 만든 것으로, 조선 전기 무덤 배치의 기본이 되었다.

세조(世祖, 1417~1468, 재위 1455~1468) 대에 들어서면서 세조의 맏아들 의경세자(懿敬世子)가 요절하는 등 좋지 않은 일들이 발생하자, 영릉의 위치가 좋지 않기 때문이라며 무덤을 옮기자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그러나 서거정(徐居正)의 반대로 옮기지 못하다가, 1469년(예종 1)에 다시 옮기자는 의논에 따라 경기도 여주로 옮겼다.

능제는 세조가 죽은 뒤부터 크게 바뀌어, 영릉을 여주로 옮기면서 병풍석(屛風石)을 없애고 난간석만 설치하였으며, 석실(石室) 대신 회격(灰隔)으로 하여 합장하였다. 또한 능 앞에 혼유석(魂遊石) 2좌를 놓아 양위임을 표시하였을 뿐 그 외에는 단릉과 마찬가지로 하였다. 여주로 영릉을 옮길 때 천장도감(遷葬都監)에서 석물을 함께 옮기자고 하였으나 왕명에 의하여 그 자리에 묻었는데, 1973년에 발굴하여 청량리 영휘원(永徽園) 북쪽에 위치한 세종대왕기념관으로 옮겼다.

영릉은 1970년 사적 제195호로 지정되었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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