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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군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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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군 묘(燕山君墓)는 연산군(燕山君, 1476~1506, 재위 1495~1506)과 그의 부인인 폐비 신씨(廢妃 愼氏, 1476~1537)의 묘이다.

연산군성종(成宗, 1457~1494, 재위 1470~1494)의 큰 아들로 1476년(성종 7년)에 태어나 1494년(연산군 즉위년)에 왕위에 올랐는데, 재위 기간 동안 폭정을 일삼았다. 광폭한 성격과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원한 등이 얽히면서 정치 현안에서 언론삼사 및 조정 대신들과 충돌하는 일이 잦았고, 이는 결국 무오사화(戊午士禍)갑자사화(甲子士禍)로 이어졌다. 아울러 사간원(司諫院)과 홍문관(弘文館), 경연 제도 등도 없애면서 조정을 혼란에 빠트렸으며, 사치스럽고 문란한 생활로 인하여 민심이 동요하기 시작하였다. 결국 1506년(연산군 12년) 중종반정(中宗反正)이 일어나 진성대군(晋城大君, 1488~1544)이 왕으로 추대되면서 연산군은 폐위되어 강화도 교동(喬桐)으로 유배되었다가, 그 해 11월에 죽었다. 1512년(중종 7년) 12월 연산군의 부인인 폐비 신씨가 진언함에 따라, 그 이듬해 현재의 위치로 천장(遷葬)하였다.

폐비 신씨는 영의정 신승선(愼承善, 1436~1502)의 딸로 1488년(성종 19년) 2월 세자빈으로 책봉되고 1494년 왕비로 진봉(進封)되었다. 그러나 1506년 연산군과 함께 폐출되어 부인(夫人)으로 강봉되었다가 1506년 사망하였다.

묘는 서편에 연산군, 동편에 부인의 묘가 있는 쌍분(雙墳)으로 되어 있다. 무덤 주변에는 연산군의 딸과 사위의 무덤도 있으며, 묘비석 앞면에는 ‘燕山君之墓(연산군지묘)’라 새겨져 있고, 뒷면에는 ‘正德八年二月二十日葬(정덕팔년이월이십일장)’이라 새겨져 있다. 연산군은 폭정을 펼치다가 폐위되었으므로, 그와 부인의 무덤은 왕의 능이 아닌 대군(大君)의 묘로 조성되어 있다.

1991년 사적 362호로 지정되었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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