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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직에게 내린 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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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 째의 김종직에게 내린 교지는 1709년(숙종 35)에 사림의 영수인 김종직을 영의정에 추증하는 내용의 교지이고, 두번 째의 교지는 김종직과 그의 처 조씨에게 내린 고신(告身)으로, 1484년(성종 15년)에 김종직(金宗直, 1431~1492)에게 내린 도승지 임명 교지(敎旨)와 1476년(성종 7년)에 그의 처 조씨(妻曺)에게 내린 숙인(淑人) 교첩(敎牒)이다.

15세기 말, 왕위에 오른 성종 때 중앙의 정치 무대에는 김종직을 비롯한 새로운 정치 세력인 사림(士林)이 등장하였다. 특히 1484년(성종 15년)을 전후로는 김종직과 그 문인이 성종 때에 중앙에 진출하면서 정치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하는데, 김종직을 도승지에 임명하는 내용의 이 교지는 김종직이 중앙 정계에서 정치활동을 본격적으로 전개하게 되는 시기에 내려졌다.

한편, 조선 시대에는 품계에 따라 고신에도 차이가 나서, 문무관 4품 이상의 고신(告身)에는 교지를 내렸고, 5품 이하의 고신에는 교첩을 내렸다. 여성의 경우에는 남편의 품계에 따라 직첩을 받았는데, 남편의 품계가 당상관(堂上官)일 경우에는 교지였으며, 당하관(堂下官)일 경우에는 교첩이었다. 그리하여 김종직은 1487년에 도승지는 정3품인 도승지에 임명되었으므로 교지를 받았고, 그보다 앞서 1476년에 김종직의 아내 조씨는 당시 김종직이 정3품으로 당하관인 통훈대부(通訓大夫)였기 때문에 교첩을 받았다.

교지와 교첩은 이조(吏曹)에서 왕명을 받들어 발급하였다. 그 형식은 「김종직김종직처조씨고신」을 보면 알 수 있는데, 발급 관청이 제일 먼저 나오고, 그 다음에는 연호(年號)와 날짜가 나온다. 그리고 고신의 내용이 나온 후에, 다시 연호와 날짜가 등장하며, 이 위에 시명지보(施命之寶)가 찍혀 있었다.

한편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국왕이 관료에게 관작⋅관직을 내리는 교지는 고신이라 하며, 문과 급제자에게 내리는 교지는 홍패(紅牌), 생원진사시 합격자에게 내리는 교지는 백패(白牌), 죽은 사람에게 관작을 높여주는 교지는 추증교지(追贈敎旨)라 하였다. 또한 토지와 노비를 내려주는 교지는 노비토전사패(奴婢土田賜牌), 향리에게 면역(免役)을 인정하는 교지는 향리면역사패라고 하며, 죽은 신하에게 시호를 내려줄 때도 교지를 썼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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