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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정원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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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는 조선 시대 왕명 출납 기관이었던 승정원(承政院)에서 처리한 여러 가지 사건들과 취급하였던 행정 사무, 의례적 사항 등을 매일 기록한 일기이다. 현재는 1623년(인조 1년) 3월부터 1910년(융희 4년) 8월까지 288년간 총 3,243책(冊)이 전해진다.

『승정원일기』는 역사를 연도에 따라 서술하는 편년체 형식의 역사서라고 할 수 있다. 승정원의 7품 주서(注書)가 기록한 매일의 일기를 한 달 분씩 정리하여 국왕에게 올려서 재가를 받은 후, 한 책으로 엮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분량이 많을 경우에는 두 책으로 나누기도 하였고, 윤달의 일기는 별도의 책으로 엮었다. 한편 임금에게 올리기 전에 일기가 밖으로 나가는 것은 금지되어 있었다.

『승정원일기』와 같은 기록물의 역사는 오래되어서, 이미 고려시대에도 기구(機構)는 다르나 승정원과 같은 기능을 가진 부서가 일기를 기록하였던 것으로 보이지만 현재 그 기록물은 남아 있지 않다. 또한 조선 전기의 『승정원일기』는 1592년(선조 25년)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소실(燒失)되고 말았으며, 임진왜란 이후부터 1623년(인조 1년)까지의 일기도 이괄(李适)의 난으로 대부분 소실되었다. 그리하여 인조(仁祖, 1595~1649, 재위 1623∼1649) 대에 1592년 이후의 일기를 보수하였으나, 1744년(영조 20년) 승정원의 화재로 또다시 소실되었다. 이에 1746년(영조 22년) 일기청(日記廳)을 설치하고 『조보(朝報)』⋅『춘방일기(春坊日記)』⋅『일성록(日省錄)』 등을 참고하여 1623년부터 1721년(경종 1년)까지의 일기를 개수하였는데, 그 이전은 사료가 거의 소실되어 개수하지 못하였다. 이후 1888년(고종 25년)에 또다시 승정원에 화재가 발생하여 1851년(철종 2년)부터 1888년까지의 일기 361책이 소실되었으므로, 1889년(고종 26년) 개수 작업을 시작하여 1890년(고종 27년)에 이를 완료하였다.

『승정원일기』는 국가의 중대사에서부터 의례적인 일에 이르기까지 국정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였던 승정원의 전모가 기록되어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그 양도 매우 방대하다. 또한 국왕과 신하들의 국정 논의 내용, 국왕에게 올린 상소문 내용 등이 축약 없이 그대로 수록되어 있다. 그러므로 조선에서는 국가 정책에 참고해야 할 일이 있으면 『승정원일기』에서 이전 사례를 찾아보며 정책을 수립하였다. 또한 『조선왕조실록』편찬을 위한 첫 번째 사료로서도 활용하는 등 그 가치가 대단히 높았으며, 현재에도 조선 시대 연구에 1차 사료로 활용하고 있다.

1999년 국보 제303호로 지정되었으며, 2001년에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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