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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 명륜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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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 명륜당(成均館 明倫堂)은 조선 시대에 유학을 가르치던 최고의 교육기관인 성균관의 강당이다. 성균관의 유생들이 강학(講學)을 하던 곳이며, 왕이 이곳에 들러 유생들을 격려하거나 직접 유생들을 가르치며 그 실력을 시험하기도 하였다.

성균관은 1298년(충렬왕 24년)에 국자감(國子監)성균감(成均監)으로 바꾸면서부터 시작되었으며, 1310년(충선왕 2년) 충선왕(忠宣王, 1275~1325, 재위 1308~1313)성균감성균관으로 개칭하였다. 한편 공민왕(恭愍王, 1330~1374, 재위 1351~1374)은 유교학부와 같이 설치되었던 율학, 서학, 산학 등의 기술학부를 분리시켜 성균관을 유학 교육만을 위한 최고의 교육 기관으로 만들었다. 이후 유학 교육 기관으로서의 역사는 조선 시대 내내 이어졌다.

성균관 명륜당의 ‘명륜(明倫)’은 인간 사회의 윤리를 밝힌다는 뜻으로, 『맹자』 등문공편(滕文公篇)에 “학교를 세워 교육을 행함은 모두 인륜을 밝히는 것이다”라고 한 데서 유래하였다. 조선은 건국 후인 1395년(태조 4년)부터 인재 양성과 학문 부흥을 위하여 새로운 도읍인 한양에 성균관을 짓기 시작하였는데, 명륜당은 1398년(태조 7년) 성균관의 대성전(大成殿) 북쪽에 건립되었다. 그러나 임진왜란(壬辰倭亂) 당시 이때 지은 명륜당은 소실(燒失)되었으며, 이후 1606년(선조 39년)에 다시 지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명륜당은 중간에 당(堂)이 있고 좌⋅우에는 학생들의 기숙사인 동재(東齋)와 서재(西齋)를 각각 둔 구조이다. 당의 가운데 부분인 중당은 맞배지붕이고, 양옆의 익실은 팔작지붕으로 위계(位階)를 나타내기 위하여 중당보다 조금 낮다. 지붕과 처마의 높낮이와 전체적인 건물의 균형이 우리나라 건축의 특색을 잘 나타내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아울러 현판의 ‘明倫堂(명륜당)’ 글씨는 1606년에 명(明)나라의 사신 주지번(朱之蕃)이 우리나라에 왔을 때 쓴 것이라고 전해진다.

한편 성균관 명륜당은 소과(小科)에 합격한 이들에 한하여 입학 자격이 주어졌는데, 일반적으로 입학 이후에는 이곳에서 거주하며 본격적으로 관직에 나아갈 수 있는 대과(大科) 준비를 하였다. 그리고 이 과정이 조선 시대 최고 엘리트 코스였다.

이외에도 명륜당은 경전 이해도를 측정하는 시험이나 소과⋅대과 시험을 시행하는 장소로도 사용되었다. 그밖에 조선 시대 관학 교육 기관으로 지방마다 설치되어 있던 향교(鄕校)에도 모두 명륜당이 부설되어 있었다.

1963년 보물 제141호로 지정되었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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