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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 대성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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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 대성전(成均館 大成殿)은 조선 시대에 유학을 가르치던 최고의 교육 기관인 성균관에서 성인들을 배향하기 위하여 설정한 공간으로, 공자(孔子, 기원전 551~기원전 479)와 그 제자들을 비롯한 성인(聖人), 현인(賢人)들의 위판(位版)을 봉안하고 있다.

성균관 대성전이 처음으로 조성된 것은 고려 때로, 1304년(충렬왕 30년)에 성균관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국자감(國子監) 안에 건립되었다. 이때 충렬왕(忠烈王, 1236~1308, 재위 1274~1308)은 공자 등의 초상화 및 제기(祭器)와 악기(樂器) 및 서책들을 원(元)나라에서 구해오게 하였다고 전해진다. 이러한 전통은 조선에도 이어져서 보다 체계화되었다.

조선 시대 성균관은 유교의 성인이나 현인에 대한 제향을 하는 동시에 유학을 가르쳐서 조선의 상황에 맞는 고급 관리를 양성하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하였다. 그 가운데 성균관 대성전은 전자를 위하여 만들어진 것으로, 처음 대성전이 조성된 것은 1398년(태조 7년)이었으며, 당시의 이름은 대성전(大聖殿)이었다. 그러나 1400년(정종 2년)에 소실(燒失)되는 바람에 1407년(태종 7년)에 다시 지었고, 1452년(문종 2년) 이름도 대성전(大成殿)으로 바꾸었다. 그런 가운데 임진왜란(壬辰倭亂)이 발생하면서 대성전은 다시 한 번 소실되었고, 그리하여 전쟁이 끝난 후 1602년(선조 35년)부터 1605년(선조 38년) 사이에 성균관 대성전과 주요 부속 건물들을 다시 지었다. 이때 완성된 성균관 대성전의 규모는 앞면 5칸과 옆면 4칸이며, 지붕은 팔작지붕이다. 건물의 옆면과 뒷면 벽 아랫부분에 돌아가며 낮게 벽담을 쌓았는데, 이는 중국 건축 기법을 느끼게 한다.

제사 공간인 대성전(大成殿)에는 공자를 주로 하여 증자(曾子, 기원전 506~기원전 436), 맹자(孟子, 기원전 372~289), 안자(顔子, 기원전 521~490), 자사(子思, 기원전 492~431) 등 4성(四聖)을 배향하였으며, 다시 10철(哲)과 6현(賢)을 종향(從享)하였다. 그리고 동무⋅서무에는 10철을 제외한 공자의 72제자를 비롯하여, 한(漢)⋅당(唐)⋅송(宋)⋅원대(元代)의 현인 및 우리나라의 18명현 등 총 112명의 위패를 종향하였다. 그러나 광복 후 전국 유림 대회의 결의로 우리나라 명현의 위패는 대성전으로 옮겨 모시고 나머지 94인의 위패는 땅에 묻었다.

한편 문묘에 모신 공자를 비롯한 여러 스승에게 드리는 제례 의식인 석전제(釋奠祭)는 매년 2월과 8월에 거행하였다. 성균관의 석전제는 국가적인 행사였기 때문에 왕을 비롯하여 대신들도 참여하였으며, 왕이 참석하는 경우에는 성균관에서는 성인을 뵙고 치르는 시험이라는 뜻을 가진 알성시(謁聖試)를 특별히 시행하기도 하였다.

1963년 보물 제141호로 지정되었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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