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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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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권(試券)은 과거에 응시한 응시자들이 제출한 답안지 또는 이를 채점한 것을 가리키며, 시지(試紙) 또는 명지(名紙)라고도 한다.

과거응시자는 시권을 작성할 때에 정해진 격식에 따랐는데, 그 양식은 시(詩)⋅부(賦)⋅송(頌)⋅책(策)⋅경의(經義)⋅서의(書義) 등 제술 과목에 따라 달랐다. 우선 공통으로 기재하는 사항으로는 시제(試題)를 들 수 있는데, 시⋅부 등 비교적 짧은 것의 시제는 그대로 베껴 썼지만, 시제가 긴 책⋅경의 등의 경우에는 ‘문운운(問云云)’ 등으로 문제를 생략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이러한 격식에 어긋나거나 운이 맞지 않으면 합격하기가 어려웠고, 합격했다고 하더라도 문제가 생기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이 밖에도 각 과목마다 답안의 분량이 정해져 있어서, 경의⋅책 등은 글자의 수, 시⋅부는 구수(句數)로써 하한선을 정하고 그 이상을 작성해야만 입격할 수 있었다.

부정을 방지하기 위해서 시권은 봉미법(封彌法)역서법(易書法)을 사용하여 응시자의 신분과 성명 등의 신원을 노출시키지 않도록 하였다. 그러는 한편으로 본인 및 신분 확인을 위해서는 응시자 본인의 직역(職役)⋅성명⋅나이⋅본관⋅거주지와 부⋅조⋅증조의 직역과 성명, 외조의 직역⋅성명⋅본관을 기록하도록 하였다.

시험이 끝나고 그 결과가 발표되면 시권은 합격 시권과 낙방 시권[落幅]으로 분류되었다. 합격 시권은 뒤에 합격 증서인 홍패(紅牌)⋅백패(白牌)와 함께 영광의 상징으로 본인에게 돌려줬지만, 낙방 시권은 일괄적으로 호조로 옮겨 여러 가지 용도로 사용하였다. 『경국대전(經國大典)』을 비롯한 여러 법전에서는 시권의 품질을 따로 규정하지는 않았으나 하품(下品)의 도련지(濤鍊紙)를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사치스러운 시권은 시관이 불살라 버리거나 당사자를 적발해 치죄(治罪)하는 등 빈부에 따라 시권의 품질이 달라지는 경우를 되도록 억제하였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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