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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교알성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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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교알성도(鄕校謁聖圖)는 정조(正祖, 1752~1800, 재위 1776~1800)가 화성향교(華城鄕校)의 대성전(大成殿)을 찾아 참배하는 모습을 그린 기록화이다. 정조의 화성 행차에 대한 공식 기록인 『원행을묘정리의궤(園行乙卯整理儀軌)』에 수록된 것으로, 크기는 세로 62.2cm, 가로 47.3cm이며,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1795년 윤2월 정조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회갑을 기념하여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惠慶宮洪氏, 1735~1815)를 모시고 아버지인 장헌세자(莊獻世子, 1735~1762)의 묘소인 현륭원(顯隆園)에 참배한 뒤 수원 화성(華城)에서 회갑연을 열었다. 「향교알성도」는 정조가 화성행궁(華城行宮)에 도착한 다음날 화성향교를 찾아 공자를 배알(拜謁)하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조선의 교육 기관 가운데 중앙에 위치한 성균관(成均館)이 국립 교육 기관으로서 최고의 엘리트들을 배출하였다면, 향교(鄕校)는 지방에서 유학을 교육하기 위하여 설립한 관학 교육 기관이었다. 향교는 중앙뿐만 아니라 기층 사회까지 유교 이념을 확대시키려는 목적으로 세워진 것이다. 한편 향교는 학제상 중등 교육 기관이라 할 수 있으며 그 교육 내용의 수준으로 볼 때 교육과정이 고등 교육 기관인 성균관에 비해 반드시 낮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성균관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과거 시험의 하나인 소과(小科)에 합격해야 했고, 향교의 생도는 대부분 소과에 응시하기 위한 준비과정에 있었으므로 향교성균관에 비해 하위 단계의 교육 기관으로 인식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또 교육 내용 면에서 볼 때 향교는 순수한 유학 교육 기관이라기보다는 국가가 필요로 하는 고급 행정직을 양성하는 곳이었으므로, 향교는 유학 위주의 문과 시험을 위한 준비 기관이기도 하였다.

이처럼 조선의 교육 과정에서 지방의 유학 확산 및 진흥을 담당한 것이 바로 향교이며, 이를 통해 지방의 유학자들이 과거 시험을 응시할 수 있는 유학적 소양을 쌓을 수 있었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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