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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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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패(馬牌)는 관원이 공적인 일로 지방에 출장을 갈 때, 역마(驛馬)를 이용할 수 있도록 상서원(尙瑞院)에서 발급해 주는 패를 말한다. 발마패(發馬牌)라고도 한다.

마패 제도가 처음 시작된 것은 고려 원종(元宗, 1219~1274) 때로, 포마법(鋪馬法)을 실시하면서 처음으로 제도화되었다. 조선 시대에 들어와서는 1410년(태종 10년)에 포마기발법(鋪馬起發法)을 실시하여, 왕명으로 역마를 이용하는 자에게는 관등 품위에 따라 마패를 발급하도록 하였다. 이와 함께 실시된 것이 역원제(驛院制)였는데 역(驛)은 말을 준비해놓은 곳이고, 원(院)은 쉴 수 있는 숙소를 말한다. 조선의 전국 주요 지역에 약 30리 정도의 간격을 두고 역원을 설치하여 마패를 소지한 자가 이곳에서 말을 이용하도록 하거나 숙박을 할 수 있도록 하였다.

조선 초기 기록에 따르면, 마패의 발급은 의정부에서 병조에 이문(移文)하면 병조에서 기마문자(起馬文字), 즉 마문(馬文)을 출사(出使)하는 관원에게 주고, 관원은 다시 승정원(承政院)에 나아가서 마패를 받도록 하는 절차를 거쳤다. 이후 『경국대전(經國大典)』에는 왕명을 받은 관원에게 병조에서 그 등수에 따라 증서인 체문(帖文)을 발급하면, 상서원에서 왕에게 보고하여 마패를 발급한다고 규정되었다.

초기의 마패는 나무로 만들어졌으나 파손이 심하여 1434년(세종 16년) 2월부터 철로 만들어 사용하다가, 『경국대전』이 반포되던 시기에 이르러 구리로 만든 마패를 사용하였다. 마패의 한 면에는 대소 관원의 등급에 따라 마필의 수효를 새기고, 다른 한 면에는 자호(字號)와 연⋅월 및 ‘尙瑞院印(상서원인)’이라는 글자를 새겼다. 왕족인 경우에는 산유자(山柚子)로 만든 원패(圓牌)를 사용하였는데, 한 면에는 말의 수, 다른 면에는 사용할 숫자대로 ‘馬(마)’자만을 새겨 넣어 사용하였다. 지방에서는 감사(監司)병사(兵使)수사(水使) 등이 마패를 지급 받아 계문(啓聞)이나 진상(進上) 등 필요한 때에 말을 이용하였다. 군사 사정으로 긴급한 경우에는 쌍마(雙馬)를 이용하고, ‘緊急事(긴급사)’라는 글자를 새겨 밤낮으로 달리게 하였다.

마패는 조선의 역원 제도를 이용하여 지방과 중앙을 신속히 연결하는 제도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역마를 지나치게 많이 이용한다는 폐단과 함께 중국의 황제가 바뀔 때마다 연호를 바꿔 새기도록 하는 문제점도 가지고 있었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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