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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동제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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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동제국기(海東諸國記)는 1443년(세종 25년) 신숙주(申叔舟, 1417~1475)가 일본 사행(使行)을 다녀온 후, 1471년(성종 2년) 왕명을 받아 일본에서 보고 들은 내용을 정리하여 기록한 책이다.

신숙주는 26세 때인 1443년 서장관(書狀官)으로 일본 사행에 동참하였는데, 서장관은 정사(正使)와 부사(副使)를 보좌하면서 사행을 기록하고 외교 문서의 작성을 맡은 중요한 직책으로, 당시의 가장 뛰어난 젊은 문관(4~6품)이 맡는 것이 관례였다. 이후 신숙주세조(世祖, 1417~1468, 재위 1455~1468) 대에는 영의정으로서 예조의 사무를 겸장하여 사대교린(事大交隣)의 외교 정책을 전담하기도 하였으며, 성종(成宗, 1457~1494, 재위 1470~1494) 즉위 이후에는 오래된 규칙을 정비하고 새로운 제도를 입안(立案)하여 외교상의 면목을 일신하였다. 그리고 1471년에는 성종으로부터 왕명을 받아 그가 직접 관찰한 일본의 정치⋅외교 관계⋅사회⋅풍속⋅지리 등을 종합적으로 정리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해동제국기』이다.

‘해동제국’이란 곧 일본의 본국⋅구주(九州) 및 대마도(對馬島, 쓰시마 섬)⋅일기도(壹岐島, 이키 섬)와 유구국(琉球國, 류쿠국)을 총칭하는 말이다. 『해동제국기』는 신숙주의 견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그 당시 일본에서 전래된 문헌과 왕년(往年)의 견문, 예조에서 관장한 기록 등을 참작해 교린 관계에 대해서 후대에 참고가 될 수 있도록 한 것이며, 실제로 교린 관계의 선규(先規)로서 오랫동안 참고 되었다. 이처럼 『해동제국기』는 조선 초기와 일본 무로마치 막부(室町幕府) 시기의 한⋅일 외교 관계에 있어서 가장 정확하고도 기초적인 사료이므로 우리나라에서뿐만 아니라 일본에서도 에도시대(江戶時代) 한⋅일 관계 연구의 유일한 사료로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한편 현재 국내에 전하는『해동제국기』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5장 분량의 초주갑인자본과 임진왜란 직후인 17세기 초 훈련도감에서 목활자로 간행한 을해자체 목활자본, 그리고 근대에 들어와 1923년에 후손 신용휴(申龍休)가 간행한 목활자본 등이 있다. 이 가운데 을해자체 목활자본은 근대 이전 시기의 유일한 목활자본이라는 점에서 문화재로서의 가치가 상당히 크다.

2010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301호로 지정되었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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