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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비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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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비문서(奴婢文書)는 노비의 매매(賣買)⋅양여(讓與)⋅상환(相換) 등에 관한 문서로, 노비문기(奴婢文記)로도 불린다.

노비의 매매⋅양여⋅기진(寄進) 등의 행위는 고대 사회로부터 있어왔지만 이와 관련하여 현재 존재하는 문서 중 가장 오래된 것은 고려 후기의 것이다. 조선 전기의 노비문기로는 분재기류(分財記類)로서 화회(和會)⋅분깃(分衿)허여문기(許與文記) 등이 일부 전하고 있다.

현재 전해지는 노비문기의 대부분은 매매에 관한 것인데, 노비의 매매는 토지나 가옥의 매매와 같이 매매 후 100일 이내에 관(官)에 청원하여 입안(立案)을 받도록 하였다. 노비는 토지에 매어 있는 생산자였으므로 잦은 매매로 토지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할 필요가 있었고, 또한 출산으로 인한 증가와 도망의 가능성이 존재하였으므로 관의 공증(公證)이 더욱 중요하였다. 입안을 받기 위해서는 우선 매매 당사자와 증인, 필집(筆執)이 입회한 가운데 매매 문서를 작성한 후, 매수인은 매매 문서에다가 입안을 신청하는 소지(所志)를 첨부하여 관에 제출하였다. 그러면 관에서 이를 검토하고 이상이 없는 경우 입안을 발급한다는 처분을 내렸으며, 이어 매도인⋅증인⋅필집을 불러 매매 사실의 진술서를 받은 후에 입안을 발급하였다. 한편 양반들은 직접 노비 매매에 관계하지 않고, 대신 대노(代奴)에게 위임하여 대행하는 형식을 취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노비문기에는 노비의 매도 사유와 노비의 전래처, 구수(口數), 가격 등이 기재되었으며, 매도인⋅증인⋅필집이 이름을 쓰고, 수결(手決)을 하였다. 수결은 상민 이상의 사람들이 문서에 사용하던 독특한 부호로 오늘날의 사인(signature, autograph)이라고 할 수 있다. 글씨를 모르는 상민 그리고 천민들은 수결을 사용하는 대신에 자신의 손가락 모양의 도시(圖示)를 한 수촌(手寸)을 사용하였다.

이렇듯 노비문기는 노비의 매매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조선 양반들의 경제 관련 문제 및 양자 제도와 재산 상속 등을 규명하는데도 커다란 도움을 주는 귀중한 자료라고 하겠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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