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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응태 부인의 한글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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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응태(李應台) 부인의 한글 편지는 1586년에 사망한 이응태(李應台, 1556~1586)의 부인이 작성한 한글 편지로, 1998년 안동대학교 박물관 측이 안동시 정하동에 위치한 이응태의 묘에서 발견하였다.

1998년 4월 안동대학교 박물관에서는 안동시 정하동의 무덤에서 키 180㎝ 정도의 건장한 남자 미이라를 발견하였는데, 장례 당시의 염습(殮襲)한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무덤 안에서는 원이 엄마의 편지 만사(輓詞)와 형이 쓴 만시(輓詩), 부채에 쓴 한시(漢時), 미투리, 장신구 등이 수습되었다. 고성 이씨(固城李氏)의 족보를 확인한 결과 무덤의 주인은 이응태로 확인 되었다. 그는 아이를 가진 젊은 아내와 어린 아들, 부모 형제를 두고 서른 한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원이 엄마는 이응태부인으로 확인되었으며, 편지에는 젊은 나이에 죽은 남편을 떠나보내는 아내의 안타까운 심정이 드러나 있어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한지 오른쪽 끝에서부터 써내려간 편지는 왼쪽 끝까지 가득 채우고도 모자라서 위 여백으로 이어졌다. 그러고도 모자라 “하고 싶은 말 끝이 없어 이만 적나이다”라는 마지막 문장은 다시 글 첫머리 쪽 여백에 거꾸로 씌어 있었다. 이것은 종이가 귀하던 당시에 흔히 쓰던 방식이었다.

편지와 함께 출토된 미투리는 삼과 머리카락으로 삼은 것이다. 이장을 하기 위해 관을 해체했을 때 망자의 머리맡에 한지로 정성껏 싼 물건이 놓여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미투리였다. 미투리를 싼 한지에 적은 글씨로 미루어 보아 부인이 자신의 머리카락을 잘라 남편을 위해 미투리를 삼은 것으로 짐작된다. 미투리를 싸고 있던 한지가 훼손되어 내용을 모두 알 수는 없었지만 ‘이 신 신어 보지도 못하고…’라는 내용으로 보아 병석에 누운 남편을 위해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신을 삼았으나 신어 보지도 못하고 죽자 미투리를 남편과 함께 묻어준 것으로 보인다. 이를 통하여 이응태 부부의 애틋한 사랑을 짐작할 수 있다.

한편 편지의 내용을 살펴 본 결과 16~17세기 조선 시대의 부부는 서로를 대등하게 ‘자네’라고 불렀음을 확인할 수 있다. 17세기 초의 것으로 알려진 진주 하씨(晉州河氏)의 묘에서 출토된 한글 편지에서는 남편이 아내에게 ‘자네’라고 하였는데, 16세기에 쓰인 이응태의 묘의 문서에서도 부인이 남편에게 ‘자네’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이응태 부인 언간은 16~17세기의 부부 관계 및 생활사, 그리고 언어학적인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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