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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세붕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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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세붕 초상(周世鵬 肖像)은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을 설립한 주세붕(周世鵬, 1495∼1554)의 초상화를 가리킨다. 가로 62.5㎝, 세로 134㎝ 크기이다.

초상 속 주세붕은 관복을 입고 왼쪽을 보며 앉아 있다. 얼굴은 간략한 선으로 묘사하고, 풍만한 몸에 비하여 목은 거의 표현하지 않아 권위적인 기품이 엿보인다. 옷의 깃을 낮게 표현한 것은 다른 초상화에도 나타나는 것으로 당시 유행하던 양식으로 보인다. 색의 바란 상태와 훼손 상태, 복식, 필법 등으로 미루어 제작 연대가 상당히 오래된 것으로 여겨지지만, 정확한 제작 연대는 알 수 없다. 다만 16세기 초상화가 대부분 공신상(功臣像)인데 비해 주세붕의 초상은 학자의 기품이 드러나는 학자상으로 매우 귀한 자료가 되고 있다.

주세붕의 본관은 상주(尙州)이며, 자는 경유(景遊), 호는 신재(愼齋)⋅손옹(巽翁)⋅남고(南皐)이고, 시호는 문민(文敏)이다. 1541년(중종 36년) 풍기군수(豊基郡守)로 임명된 주세붕은 이듬해 백운동(白雲洞)에 안향(安珦, 1243~1306)을 모신 사당 회헌사(晦軒祠)를 세웠다. 그리고 이듬해인 1543년(중종 38년) 이곳에 주자(朱子)의 백록동학규(白鹿洞學規)를 본받아 사림 자제들을 위한 교육기관으로 백운동서원을 세웠다. 즉 제향과 학업을 한 공간에서 하도록 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나라의 첫 서원(書院)이었다.

서원의 목적은 사림을 교육하는 동시에 사림의 중심 기구로서 향촌의 풍속을 교화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하여 주세붕서원 운영을 위한 재정을 확보하고, 서원에서 유생들과 강론(講論)을 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이렇듯 서원에 대한 끊임없는 관심을 바탕으로 주세붕은 1551년(명종 6년)에는 황해도관찰사(黃海道觀察使)로 봉직하는 동안 해주(海州)에 수양서원(首陽書院)을 세워 최충(崔冲, 984~1068)을 제향하기도 하였다.

서원의 설립 외에도 주세붕도학에 힘쓸 것을 주장하며 불교의 폐단을 지적하였고, 기묘사화(己卯士禍) 이후 폐지되었던 여씨향약(呂氏鄕約)을 다시 시행할 것을 건의하기도 하였다. 학문적으로도 상당히 높은 평가를 받았기 때문에 홍문관(弘文館)과 성균관(成均館) 등의 학문 기관에서 주로 활동을 하였으며, 황해도관찰사로 임명되었을 때는 대간(臺諫)에서 그의 내직을 요청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활동을 펼친 주세붕은 1554년(명종 4년)에 사망하였고, 이후 1633년(인조 11년) 백운동서원이 사액을 받아 이름이 바뀐 소수서원(紹修書院)에 배향되었다.

백운동서원은 1550년(명종 5년) 이황(李滉, 1501~1570)의 건의로 소수서원으로 사액을 받으면서 풍기 사림의 중심기구로 자리 잡았다. 이러한 중요성과 오랜 역사 덕분에 소수서원은 1868년(고종 5년)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 1820~1898)서원 철폐 당시에도 훼철되지 않고 존속한 47개 서원으로 선정되었다.

1981년 주세붕 초상은 보물 제717호로 지정되었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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