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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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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 소수서원(榮州 紹修書院)은 풍기 군수(豊基郡守)로 부임한 주세붕(周世鵬, 1495∼1554)이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에 안향(安珦, 1243~1306) 등을 배향하고, 유생 교육을 위하여 설립한 서원이다. 처음에는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이라는 이름으로 설립되었으나, 1550년(명종 5년)에 ‘소수서원(紹修書院)’으로 사액(賜額)되었다.

1542년(중종 37년) 주세붕은 백운동(白雲洞)에 안향을 모신 사당 회헌사(晦軒祠)를 세웠다. 그리고 이듬해인 1543년(중종 38년) 이곳에 주자(朱子)의 백록동학규(白鹿洞學規)를 본받아 사림 자제들을 위한 교육기관으로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을 세웠다. 즉 제향과 학업을 한 공간에서 하도록 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나라의 첫 서원(書院)이었다. 이어 백운동서원은 1544년에 안축(安軸, 1282~1348)과 안보(安輔, 1302~1357)를, 1633년(인조 11년)에는 주세붕을 추가 배향하였다.

이런 가운데 1548년 풍기 군수로 부임한 이황(李滉, 1501~1570)서원을 공인하고 나라에 널리 알리기 위하여 백운동서원에 대한 사액과 국가의 지원을 요청하였다. 이에 백운동서원은 1550년에 ‘소수서원’으로 사액되었으며, 아울러 국가의 지원도 받게 되었다. 이러한 조처는 공인된 교육기관의 위치를 확보하는 것으로, 그 뒤 다른 서원들의 설립과 운영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게다가 서원은 단순한 향사와 교육 기능을 수행하는 것만이 아니라, 지방 사림(士林)들의 정치⋅사회 활동의 중심 역할을 하는 곳으로 발전하였다. 실제로 풍기의 사림들은 소수서원이 사액을 받고 국가에서 인정한 사학(私學)의 위치를 굳혀가자 적극적으로 서원에 참여하였으며, 이 서원을 자신들의 집결소로, 또한 향촌의 중심기구로 만들어 갔다. 이처럼 소수서원이 선현 배향과 지방 교육의 한 부분을 담당하는 동시에 향촌 사림의 정치적⋅사회적 기구로 정착되어 가자, 전국 각지에서 서원이 설립, 운영되며 조선 시대 사학의 중심기관으로 발전하였다. 이렇게 서원이 유행함에 따라 많은 폐단 또한 발생하게 되었고, 결국 1868년(고종 5년)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 1820~1898)서원 철폐령을 내렸다. 그러나 소수서원은 역사와 그 중요성 덕분에 철폐되지 않는 47개의 서원에 포함되어, 그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다.

경내 건물로는 문성공묘(文成公廟)⋅명륜당(明倫堂)⋅일신재(日新齋)⋅직방재(直方齋)⋅영정각(影幀閣)⋅전사청(典祀廳)⋅지락재(至樂齋)⋅학구재(學求齋)⋅서장각(書藏閣)⋅경렴정(景濂亭)과 탁연지(濯硯池)⋅숙수사지 당간지주 등이 있다. 아울러 국보 제111호인 회헌영정(晦軒影幀), 보물 제485호인 대성지성문선왕전좌도(大成至聖文宣王殿座圖), 보물 제717호인 주세붕 초상(周世鵬肖像)을 소장하고 있다. 매년 봄과 가을에 향사를 지내고 있으며, 서장각에는 141종 563책의 장서가 있다.

1963년 사적 제55호로 지정되었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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