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 속 이미지 자료주제별조선 시대성리학적 사회 질서의 확립

도산서원

※ 가운데 사진을 클릭하시면 이미지 슬라이드를 보실 수 있습니다.

안동 도산서원(安東 陶山書院)은 1574년(선조 7년)에 이황(李滉, 1501~1570)의 학덕을 추모하기 위하여 그의 문인과 유림들이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陶山面) 토계리(土溪里)에 세운 서원이다.

이황주자학을 집대성한 유학자로 조선의 유학을 정립하였는데,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 운영 및 도산서당 설립을 통하여 후진 양성과 학문 연구에도 전력을 기울였다. 그리하여 그가 죽은 지 4년 후인 1574년(선조 7년)에 그의 학덕을 추모하는 문인과 유생들이 상덕사(尙德祠)라는 사당과 강당인 전교당(典敎堂) 및 동재(東齋)와 서재(西齋)를 지어 서원을 완성하였으며, 이듬해인 1575년(선조 8년)에는 한호(韓濩)의 글씨로 된 사액(賜額)을 받음으로써 영남 지방 유학의 중심지가 되었다.

이후 안동 도산서원이황의 뜻을 받들어 성리학을 교육하여 사림의 수를 증가시켰으며, 서원을 중심으로 하는 사림의 여론 형성에도 중심 역할을 하였다. 이렇듯 조선 시대의 대표적 서원이었던 덕분에 1864년(고종 1년)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 1820~1898)이 전국의 서원 가운데 47개를 제외한 모든 서원을 철폐할 때에, 안동 도산서원은 소수서원(紹修書院) 및 숭양서원(崧陽書院) 등과 더불어 철폐 대상에서 제외되기도 하였다.

현재는 약 1,300여 종, 5,000여 권의 장서와 장판(藏板) 및 이황의 유품이 남아 있으며, 상덕사⋅전교당⋅전사청(典祠廳)⋅한존재(閑存齋)⋅동재⋅서재⋅광명실(光明室)⋅장판각(藏板閣)⋅도산서당⋅역락서재(亦樂書齋)⋅농운정사(隴雲精舍)⋅유물전시관 등의 건물이 남아 있다. 또한 이황의 유덕을 기리는 추모 행사인 도산서원 향사례(享祀禮)가 매년 봄가을 서원 내 상덕사에서 치러지는데, 봄에는 음력 2월 중정일(中丁日)에, 가을에는 음력 8월 중정일에 지낸다.

한편 안동 도산서원은 1969년 5월 28일 사적 제170호로 지정되었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창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