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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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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은 태조(太祖) 이성계(李成桂, 1335~1408, 재위 1392∼1398)부터 철종(哲宗, 1831~1863, 재위 1849~1863)까지 각 왕이 교체될 때마다 이전 왕의 기록들을 종합해서 사건이 일어난 순서대로 기록⋅편찬한 역사서이다.

『조선왕조실록』은 왕이 승하하면 다음 왕대에 임시로 실록청(實錄廳)을 설치하여 전 왕대의 실록을 편찬하는 것이 상례였으며, 실록청의 구성원은 모두 춘추관(春秋館)의 관원이었다. 관원들은 실록 작성의 기본 자료가 되는 사초(史草)를 모두 수집하여 『조선왕조실록』을 편찬하였다. 사초는 국왕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모든 것을 빠짐없이 기록하는 사관이 기록으로, 사초사관 모두 철저하게 독립성을 확보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임금이라고 해도 절대로 사초를 열어볼 수 없었으며, 사관의 기술 또한 철저히 그 비밀이 보장되었다. 또한 실록을 작성한 후에는 기밀 누설을 방지하기 위하여, 조지서(造紙署)가 있던 자하문(紫霞門) 밖 차일암(遮日巖) 시냇물에서 세초(洗草)를 하였다. 때문에 실록 자료에 대한 신빙성과 정확성은 매우 높다고 평가된다. 그러나 사초를 문제로 삼아 무오사화(戊午士禍) 등의 사건이 일어나기도 하였고, 당쟁이 심할 때에는 사관이 자기 당파에 유리하게 편파적으로 실록을 편찬하여 공정성을 잃는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집권당이 바뀌면서 수정하여 다시 편찬하기도 하였는데, 『선조수정실록(宣祖修正實錄)』, 『현종개수실록(顯宗改修實錄)』, 『경종개수실록(景宗改修實錄)』 등이 그 예이다.

연산군(燕山君, 1476~1506, 재위 1495~1506)광해군(光海君, 1575~1641, 재위 1608~1623)처럼 왕위에서 쫓겨난 임금들의 경우에도 실록청이 설치되었지만, 이 경우에는 ‘실록’이 아닌 ‘일기’라고 하였다. 단종(端宗, 1441~1457, 재위 1452∼1455)의 경우도 왕위에서 쫓겨나는 바람에 실록 편찬 당시에는 『노산군 일기(魯山君日記)』라고 하였으나, 이후 왕으로 승격되면서 『단종실록(端宗實錄)』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고종 황제실록(高宗皇帝實錄)』, 『순종황제실록(純宗皇帝實錄)』의 경우에는 일본인들의 지시를 받으며 편찬되었기 때문에 사실의 왜곡 등이 심하여 엄밀한 의미의 『조선왕조실록』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때문에 일반적으로 『조선왕조실록』이라고 하면 『태조실록(太祖實錄)』부터 『철종실록(哲宗實錄)』까지를 의미한다.

이렇게 편찬된 실록은 모두 4부를 인쇄하여 궁궐의 춘추관과 충주⋅전주⋅성주 4곳의 사고(史庫)에 각각 1부씩 보관하였다. 임진왜란(壬辰倭亂)으로 전주 사고를 제외한 모든 사고가 소실되자, 1603년(선조 36년)에 전주 사고본을 바탕으로 다시 4부씩 인쇄하였다. 그리고 춘추관과 태백산, 묘향산, 오대산, 강화도에 다시 사고를 마련하고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였다. 이후에도 이괄(李适)의 난병자호란(丙子胡亂) 등으로 일부 소실되기도 하였으나, 20세기 초까지 태백산, 정족산, 오대산, 강화도에서 옮긴 적상산 사고에 남아서 전해졌다. 그러다가 일제시대 이후 각각의 사고에서 보관되던 『조선왕조실록』은 여러 번의 이동을 하게 되었는데, 우선 정족산과 오대산 사고본은 조선 총독부로 이관되었다가 경성 제국 대학으로 이장되었다. 이 가운데 오대산 사고본은 이후 도쿄 제국 대학(東京帝國大學)으로 반출되었다가 2006년 일부 반환되었고, 정족산본은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보관 중이다. 또한 태백산 사고본은 서울대학교 규장각에서 소장하다가 국가기록원으로 이관하였으며, 적상산 사고본은 장서각으로 이관되었다가 한국 전쟁 당시 북한으로 옮겨졌다.

『조선왕조실록』은 그 양의 방대함과 조선 시대의 정치⋅외교⋅군사⋅제도⋅법률⋅경제⋅산업⋅교통⋅통신⋅사회⋅풍속⋅천문⋅지리⋅음양⋅과학⋅의약⋅문학⋅음악⋅미술⋅공예⋅학문⋅사상⋅윤리⋅도덕⋅종교 등 각 방면의 역사적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귀중한 역사 기록물이다. 물론 지배층 위주의 관찬 기록이라는 한계성이 있지만, 조선 시대의 역사와 문화를 연구하는 데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자료가 되는 사료임에는 틀림없다.

1973년 국보 제151호로 지정되었으며, 현재 남아있는 정족산본 1,181책, 태백산본 848책, 오대산본 74책, 기타 산엽본 21책, 총 2,077책은 1997년에 훈민정음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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