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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산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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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오대산 사고(平昌 五臺山 史庫)는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과 왕실의 족보인 『선원보략(璿遠譜略)』을 보관하기 위하여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오대산 월정사(月精寺) 북쪽 10리 남호암(南虎巖) 기슭에 지었던 사고(史庫)로, 조선 후기 5대 사고 중 하나이다.

평창 오대산 사고가 사고지로 지정된 데는 사명대사(四溟大師, 1544~1601)의 노력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퇴락한 월정사(月精寺)를 복원하기 위하여 영감암(靈鑑庵)에 머물던 사명대사가 평창 오대산 사고의 터를 삼재(三災)가 들지 않는 곳이라고 주청한 덕분에 그곳에 사고를 세우게 됐다는 것이다.

조선에서는 일찍부터 만일에 대비하여 『조선왕조실록』과 같이 중요한 기록들을 각지로 나누어서 보관하였다. 그리하여 『조선왕조실록』은 조선 전기에는 서울의 춘추관(春秋館)을 비롯하여 충주⋅전주⋅성주에서 각각 1질씩 보관하였는데, 임진왜란(壬辰倭亂)으로 전주 사고에서 보관하던 것만 빼고 나머지는 모두 불에 타버렸다. 이에 선조(宣祖, 1552~1608, 재위 1567∼1608)는 1606년(선조 39년) 『조선왕조실록』을 다시 간행하여 춘추관⋅태백산⋅묘향산⋅강화 마니산⋅오대산에 사고를 짓고 보관하게 하였다. 이후 평창 오대산 사고는 300년 간 안전하게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였으나, 일제시대에 접어들면서 다른 사고에 보관되던 『조선왕조실록』들과 마찬가지로 오대산 사고본도 큰 변화를 맞게 되었다. 우선 조선 총독부로 이관되었다가 경성 제국 대학으로 이장되었으며, 이어 도쿄 제국 대학(東京帝國大學)으로 반출되었던 것이다. 이후 관동대지진(關東大地震) 당시 오대산 사고본이 모두 소실된 것으로 알려졌으나, 2006년 도쿄대학 도서관에 47책이 보관 중인 것이 확인되어 기증의 형식으로 돌려받았다.

원래 평창 오대산 사고는 실록각(實錄閣)과 선원각(璿源閣), 별관, 수호사찰인 영감사(靈鑑寺)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참봉 2명과 군인 60명, 승려 20명으로 하여금 사고를 관리하고 보호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일제시대에 『조선왕조실록』이 이동하면서 평창 오대산 사고는 그 기능을 하지 못하다가, 한국 전쟁 당시 불에 타서 터만 남게 되었다. 그러던 가운데 1992년 사각과 선원보각으로 이루어진 사고의 건물을 다시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63년 사적 제37호로 지정되었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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