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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산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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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 태백산 사고지(奉化 太白山 史庫址)는 조선 후기의 5대 사고(史庫) 중 하나인 태백산 사고가 있던 곳으로, 경상북도 봉화군 춘양면 석현리의 각화사(覺華寺) 부근에 있다.

태백산 사고지는 능선에 둘러싸인 경사진 지형에 남쪽으로 축대를 쌓아 실록각과 선원각을 타원형의 담장 안에 각각 동⋅서로 배치하고, 담장 밖으로는 포쇄각, 근천관 등의 부속건물을 둔 것으로 보인다.

조선에서는 일찍부터 만일에 대비하여 『조선왕조실록』과 같이 중요한 기록들을 각지로 나누어서 보관하였다. 그리하여 『조선왕조실록』은 조선 전기에는 서울의 춘추관(春秋館)을 비롯하여 충주⋅전주⋅성주에서 각각 1질씩 보관하였는데, 임진왜란(壬辰倭亂)으로 전주 사고에서 보관하던 것만 빼고 나머지는 모두 불에 타버렸다. 이에 선조(宣祖, 1552~1608, 재위 1567∼1608)는 1606년(선조 39년) 『조선왕조실록』을 다시 간행하여 춘추관⋅태백산⋅묘향산⋅강화 마니산⋅오대산에 사고를 짓고 보관하게 하였다.

이 가운데 태백산 사고는 1605년(선조 38년) 10월 경상감사 류영순(柳永詢, 1552~1630)이 태백산의 입봉(立峰) 아래가 사고지(史庫址)로서 적당하다고 보고하면서 선정되었다. 이듬해인 1606년 4월 사고를 완성하고, 신인본(新引本) 1질을 봉안함으로써 외사고(外史庫)의 기능을 수행하게 되었다. 그 뒤 1634년(인조 12년) 이 사고가 물이 빠지지 않아 건물 붕괴의 위험이 있다는 문제점이 제기되자, 유황(兪榥, 1599~1655)이 1리쯤 떨어진 서운암(棲雲庵) 뒤에 새 사고지로서 적당한 곳이 있다고 보고하였다. 이에 정확한 시기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서운암 부근 현재 사고지로 이건된 것으로 보인다. 이후 1913년까지 이곳에서 실록을 보관하였다.

이곳에 보관되던 도서들은 국권 강탈 이후 규장각 도서와 함께 조선 총독부에 보관되다가 1930년에 경성제국대학(京城帝國大學)으로 이관되었다. 그리고 2012년 현재는 서울대학교 규장각에서 보관 중이다.

한편 봉화 태백산 사고지는 다른 사고터에 비해 무너진 석축과 기둥, 초석과 기와 및 벽돌 등 그 흔적이 비교적 많이 남아 있어, 이를 바탕으로 1988년 건물의 유구를 발굴 정비한 바 있다.

1991년 사적 제348호로 지정되었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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