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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규장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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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장각(外奎章閣)은 1782년(정조 6년) 2월 정조(正祖, 1752~1800, 재위 1776~1800)가 강화도에 왕실 관계 서적 등의 안전한 관리를 위하여 설치한 규장각(奎章閣)의 부속 도서관이다.

조선은 의궤(儀軌)나 실록(實錄) 등 중요한 왕실 도서의 안전한 관리를 위해서 여러 곳에 사고(史庫)를 두었는데, 강화도에는 마니산 사고와 정족산 사고, 그리고 외규장각이 설치되어 있었다. 그 가운데 외규장각은 왕실 관계 서적 1,000여 종, 6,000권 가량을 보관하였으나, 1866년(고종 3년) 병인양요(丙寅洋擾) 당시 프랑스군에 의해 297권의 왕실의 주요행사를 기록한 의궤 191종(유일본 30종 포함) 297책을 포함한 도서 359점을 약탈당하였고 나머지는 그 건물과 함께 소실됐다.

한편 1975년 서지학자 박병선(朴炳善) 박사가 프랑스 파리 국립도서관에서 외규장각 도서를 처음 발견한 후, 1991년 서울대학교에서 정부에 도서 191종 279권의 반환 추진을 요청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1992년 정부는 본격적으로 프랑스에 도서 반환을 요청하였다. 이후 경부고속철도부설권을 따내기 위하여 미테랑(Francois Mitterrand, 1916~1996) 전(前) 프랑스 대통령이 외규장각 도서 반환 의지를 표명하기도 하였으나, 약속과 달리 반환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 2000년 10월 양국 정상회담에서 프랑스 측은 2001년까지 외규장각 고문서 가운데 필사본이 없는 63권을 반환하겠다고 약속하였으나 이번에도 지지부진하였다. 그러다가 2010년 3월 한국 정부는 약탈도서에 대한 영구대여 방식을 프랑스 정부에 공식 요청하였고, 그해 11월 프랑스 사르코지(Nicolas Sarkozy, 1955~) 대통령이 5년 단위 갱신의 대여방식으로 반환에 합의하였다. 이에 따라 2011년 4월부터 약탈해 간 294권의 조선왕실 의궤를 포함한 전체 297권의 외규장각 도서가 4차례에 걸쳐 국내로 돌아오게 되었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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