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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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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화성(水原 華城)은 정조(正祖, 1752~1800, 재위 1776~1800) 때 수원(水原)에 만든 성으로, 정조가 아버지 장헌세자(莊獻世子, 1735~1762)에 대한 효심에서 수도를 수원으로 옮길 목적을 갖고 세운 성이다.

서쪽으로는 팔달산을 끼고 동쪽으로는 낮은 구릉의 평지를 따라 쌓은 평산성(平山城)인 수원 화성은 공격과 방어가 모두 가능한 성이다. 정조는 불운하게 숨진 아버지의 능을 풍수지리학에 따라 양주에서 길지(吉地)인 수원의 화산(花山)으로 이장하면서, 그 부근 주민들을 팔달산 아래로 이주하도록 하였다. 이에 주민들을 위한 축성의 필요성이 제기되었고, 정조 또한 자신의 왕도 정치를 실현하기 위하여 수원 화성을 건설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리하여 1794년(정조 18년)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의 설계에 따라 채제공(蔡濟恭, 1720~1799)의 감독 하에 시작된 공사는 2년 뒤인 1796년에 마무리되었다. 수원 화성은 성곽의 둘레는 약5.7㎞이며, 성벽의 높이는 4~6m 정도이고, 면적은 약 1,300,000㎡에 이른다.

수원 화성 건설에는 거중기(擧重機) 및 도르래와 같은 새로운 기계들이 동원되었다. 이것은 전통적으로 내려오던 축성 기술에 서양에서 들어온 신기술이 합해진 것으로, 당시의 모든 기술이 집약된 것이었다. 게다가 보통 때 거주하는 읍성과 피난처로 삼는 산성이 분리되었던 이전과는 달리 주민들이 거주하는 읍성에 방어력을 강화한 것도 수원 화성의 특징이었다. 따라서 수원 화성에는 공심돈(空心墩)과 같은 방어 시설이 마련되어 있었다.

한편 현재 남아있는 수원 화성은 한국 전쟁 등으로 훼손된 것을 복원한 것으로, 성내 건축물 가운데 정조 대에 만들어진 것은 낙남헌(洛南軒) 밖에 없다. 1975년부터 4개년 계획으로 시작된 수원 화성 복원공사는 『화성성역의궤(華城城役儀軌)』가 있었기에 가능하였다. 한국 건축사상 가장 정확하고 풍부한 내용을 가진 보고서로 꼽히는 『화성성역의궤』는 화성을 건축하던 당시 작성한 공사기록서로 1801년에 발간된 것이다. 이 덕분에 수원 화성은 완벽한 복원이 가능하였고, 그리하여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될 수 있었다.

수원 화성은 정조의 아버지에 대한 효성 및 새로운 정치와 수도에 대한 열망으로 지어진 성이며 정약용의 거중기를 비롯한 당시의 모든 기술이 총망라되었다는 점에서 조선 후기 기술 발전의 정도를 알 수 있게 한다.

1963년 사적 제3호로 지정되었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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