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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조순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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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조순 초상(金祖淳 肖像)은 순조(純祖, 1790~1834, 재위 1800~1834)의 장인으로, 조선 후기 안동 김씨(安東金氏)의 세도 정치 기반을 마련한 김조순(金祖淳, 1765~1832)의 초상화이다.

김조순은 본관은 안동(安東)이며, 초명은 낙순(洛淳)이고, 자는 사원(士源), 호는 풍고(楓皐)이다. 영의정 김창집(金昌集, 1648~1722)의 4대손이며, 할아버지는 김달행(金達行, 1706~1738), 아버지는 부사 김이중(金履中, 1736~1793), 어머니는 신사적(申思迪, 1683~?)의 딸이다. 1785년(정조 9년) 정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검열(檢閱)이 되었고, 초계문신(抄啓文臣)으로 발탁되어서는 강원도⋅황해도⋅함경도 지방의 민요와 풍속을 채록해 『시정기(時政記)』에 수록하였다. 1788년(정조 12년)에는 시파(時派)벽파(僻派) 싸움에서 중립을 지켰으며, 이어 당쟁을 없앨 것을 주장하였다. 이후 검교(檢校)⋅직각(直閣)⋅보덕(輔德)을 거쳐 양관 대제학(兩館大提學) 등을 역임하였다. 그런 가운데 1802년(순조 2년) 김조순의 딸이 순조와 혼인하여 순원왕후(純元王后, 1789~1857)가 되면서 그는 영안부원군(永安府院君)에 봉해졌다.

정조(正祖, 1752~1800, 재위 1776~1800)와 가까웠던 김조순은 국구(國舅)가 된 뒤로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른 순조를 보필하여 군덕(君德)을 함양시키는 일에 진력하였다. 아울러 당파나 세도를 형성하지 않으려고도 노력하였으나, 상황은 그의 생각과 다르게 흘러갔다. 천성이 어질고 너그러웠던 탓에 그를 둘러싼 척족 세력들을 제어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이는 결국 안동 김씨의 세도 정치 기반을 조성하는 결과를 낳았다. 그리고 이때에 세력을 형성한 안동 김씨 세력은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 1820~1898)이 등장하기 전까지 정국을 주도하였다.

한편 김조순은 문장이 뛰어나서, 비명⋅지문⋅시책문⋅옥책문 등 많은 저술을 남겼으며, 저서로 『풍고집(楓皐集)』이 있다. 또한 죽화(竹畵)도 잘 그렸다고 전해진다. 정조의 묘정에 배향되었으며, 양주의 석실서원(石室書院)과 여주의 현암서원(玄巖書院)에도 제향되었다. 시호는 충문(忠文)이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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