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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사 행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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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그림은 국사편찬위원회에 소장된 ‘조선통신사 행렬도(朝鮮通信使 行列圖)’로 1711년(숙종 37)에 조선에서 일본으로 파견한 통신사 일행 중 최고 책임자인 정사(正使)의 행렬 부분이다. 이 행렬도의 전체 길이는 41.72m, 폭27cm이며, 299명의 통신사행원과 1,800여 명의 일본 측 관계 무사와 호위 벼졸, 짐꾼, 129필 가량의 말이 묘사되어 있다. 이 행렬도는 국사편찬위원회 소장 『대마도 종가문서(對馬島宗家文書)』에 들어 있으며, 당시 일본 막부(幕府)의 지시로 대마번(對馬藩)이 주관해서 그린 행렬도 가운데 유일하게 완전한 상태로 남아 있다.

두 번째 그림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에도성에 들어가는 통신사 행렬도[仁祖十四年 通信使入江戶城圖]’로 1635년(인조 14)에 파견된 통신사 일행이 에도[江戶], 즉 현재의 도쿄[東京]에 들어가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당시 통신사 일행의 총 인원은 475명이었고, 정사는 임광(任絖, 1579~1644), 부사는 김세렴(金世濂, 1593~1646)이었다. 보통의 통신사 행렬도가 일본인들에 의하여 그려진 것과는 다르게, 이 작품은 당시 통신사 일행이었던 김명국(金明國, 1600~?)이 그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길이는 95cm, 폭은 31cm이며, 작품 속 각 인물 상단에는 직책(職責)이 기재되어 있어 그림 속 인물들의 역할을 알 수 있게 한다.

통신사란 조선이 일본에 보낸 외교사절단을 이르는 명칭으로, 주로 일본에서 요청을 하고 조선에서 응답하여 파견하는 형식이었다. 통신사 일행이 지나는 곳마다 이들을 구경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으며, 통신사가 머무는 숙소에는 수행원들로부터 글이나 글씨를 받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고 한다.

통신사의 목적은 기본적으로는 막부의 장군에게 조선 국왕의 국서를 전달하는 것이었지만 그 외에도 당시 일본의 정세를 탐색하거나 왜관(倭館)에서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도 있었다. 통신사는 대개 출발에서 귀국까지 6개월~1년이 소요되었으며 도중에 풍랑을 만나는 등의 위험한 경우도 있어서 가는 것을 꺼려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통신사로 다녀온 이들은 일본에서 겪은 일들을 여러 형태의 사행록(使行錄)으로 남겼다. 훗날 홍계희(洪啓禧, 1703~1771)가 이것을 『해행총재(海行總載)』라는 견문록으로 엮었는데, 이것은 당시 한일교류 및 통신사의 행로와 사람들의 생활 등을 전하는 자료의 역할을 하고 있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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