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 속 이미지 자료주제별조선 시대조선 후기 정치⋅사회 변화

상평통보

※ 가운데 사진을 클릭하시면 이미지 슬라이드를 보실 수 있습니다.

상평통보(常平通寶)는 구리와 주석의 합금을 이용하여 만든 조선 시대의 유일한 법화(法貨)로, 조선 말기까지 유통된 명목화폐(名目貨幣)이다. 둥근 모양 가운데 정사각형의 구멍을 뚫고 상하좌우에 상(常)⋅ 평(平)⋅ 통(通)⋅보(寶)라고 한자로 한 자씩 새기고 뒷면에는 주조한 관청의 이름을 적었다.

고려 시대부터 조선 초기까지 조정에서는 지속적으로 화폐를 유통시키고자 하였으나, 사회 경제적으로 화폐 유통의 필요성이 제기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매번 실패로 돌아갔다. 그러다가 임진왜란(壬辰倭亂)병자호란(丙子胡亂)이 발생하면서 상황은 변하였는데, 전쟁 이후 상공업이 성장하고 국내 생산력이 증진되어 상품 교환 경제가 발달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찍부터 통화 기능을 하였던 쌀과 포 등의 물품화폐와 칭량은화(稱量銀貨)는 화폐 기능면에서 점차 한계를 드러냈고, 대신 명목화폐인 동전 통용의 필요성이 커졌다. 아울러 전쟁을 겪으면서 파탄에 직면한 국가 경제 재건을 위한 재원 확보책도 절실해졌다. 이러한 요인들이 합쳐지면서 조정에서는 다시 명목화폐에 대한 논의를 하였고, 결국 1678년(숙종 4년) 영의정 허적(許積, 1610~1680)의 제의에 따라 상평통보를 법화로 채택하여 주조⋅유통하게 되었다. 그리고 상평통보의 주조는 호조(戶曹)⋅상평청(常平廳)진휼청(賑恤廳)⋅정초청(精抄廳)⋅사복시(司僕寺)⋅어영청(御營廳)훈련도감(訓鍊都監) 등 7개 관청과 군영에서 맡았다. 이후 상평통보의 주조 및 발행을 합리적으로 철저하게 통제하고자 화폐 주조 관리 체계를 일원화하는 시도 끝에, 1785년(정조 9년) 마침내 호조에서 상평통보 관련 업무를 전담하게 되었다.

한편 17세기 말 이후 상평통보는 전국적으로 보급⋅유통되었으며, 상품 매매⋅품삯⋅세금⋅소작료 등을 지불하는 데 사용되었다. 그러나 순조(純祖, 1790~1834, 재위 1800~1834) 대에 들어서면서 화폐 주조 관리 체계가 무너지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각 관청에서는 재정 궁핍을 타개하기 위하여 상평통보를 주조하였고, 여기에 국가에서 전담해야 할 화폐 주조에 민간인들이 참여하는 도급제까지 나타나는 등 주전 행정이 여러모로 문란해졌다. 결국 고종 25년(1888년) 상평통보는 그 발행이 중단되었고, 화폐정리사업을 추진하며 회수⋅폐기되었다.

폐단이 발생하여 발행이 중단되기는 하였으나, 상평통보의 통용은 물자 생산과 유통의 활성화에 큰 기여를 하였으며, 아울러 이를 바탕으로 수공업과 광공업도 발전하게 되었다. 이러한 점에서 상평통보는 우리 사회가 근대로 이행하는데 중요한 경제적 토대를 제공하였다는 의의가 있다 하겠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창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