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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왕제색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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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는 조선 후기 화가인 겸재(謙齋) 정선(鄭歚, 1676∼1759)이 비온 뒤의 인왕산 모습을 그린 그림으로, 크기는 가로 138.2㎝, 세로 79.2㎝이다.

1751년(영조 27)에 겸재 정선은 직접 인왕산을 보고 이 그림을 그렸다. 당시 산수화는 중국의 화풍을 모방하여 실제 경치가 아니라 작가의 의식 속에 존재하는 이상적인 자연을 그린 이념 산수화가 주를 이루었다. 반면 정선의 인왕제색도는 직접 경치를 보고 그린 실경 산수화(實景山水畵)로서 우리나라의 산수를 매우 잘 표현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 화법 역시 뛰어나다. 따라서 그의 400여 점의 유작(遺作) 가운데 조선 후기 실경 산수화를 대표하는 걸작으로 평가된다.

정선은 비온 뒤 안개가 피어오르는 인왕산의 인상적 순간을 포착하여 그 느낌을 잘 표현하였다. 산 아래에는 나무와 숲, 자욱한 안개를 표현하고 위쪽으로 바위를 가득 배치하였다. 비에 젖은 암벽은 중량감이 넘치게 표현되어 있으며, 압도적인 바위와 산 아래 낮게 깔린 구름, 농묵(濃墨)의 수목을 배치한 짜임새 있는 구도는 옆으로 긴 화면설정과 함께 현대적인 감각까지 풍긴다. 특히 그림의 중앙을 압도하는 주봉을 잘라, 대담하게 적묵법(積墨法)으로 양감과 중량감을 박진감 있게 재현한 솜씨는 동양회화권 내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수법이다. 그림 오른쪽 상단 여백에는 “인왕제색 신미윤월하완(仁王霽色 辛未閏月下浣)”이라는 글씨가 적혀있어 정선이 그림을 그린 시점이 신미년(1751)임을 알 수 있다. 그 밑에는 ‘정선(鄭敾)’이라는 백문방인(白文方印)과 ‘원백(元伯)’이라는 주문방인(朱文方印)이 찍혀 있다.

숙종부터 정조에 이르는 시기에는 명나라를 사대하던 경향에서 벗어나 조선의 것에 대한 자부심을 바탕으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표현하고자 하는 진경 산수(眞景山水) 화풍이 나타났다. 본래 이러한 실경을 화폭에 담는 경향은 고려 이래 오랜 전통으로 지속되어 왔으나, 18세기에 정선 등의 작가를 중심으로 다시 화단의 주도적인 화풍으로 부상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실경 산수화는 ‘동국진경(東國眞景)’으로 불렸는데 이는 조선의 산천에 대한 자긍심의 표출이라는 점에서 공통되며, 이러한 자긍심의 원천은 조선의 다양한 산천 중에서도 금강산에서 시작된다. 금강산은 고려 때도 불교의 성지로서 각광받았으며, 중국 사신들이 조선을 방문하면 반드시 들러 보고 싶어한 명소였다. 따라서 정선 역시 1734년 「금강전도(金剛全圖)」를 그렸는데, 인왕제색도와 더불어 조선 후기 진경 산수화의 걸작이라 할 수 있다. 정선에 이어 진경 산수화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 김홍도 역시 1778년 정조의 어명으로 「금강사군첩(金剛四君帖)」을 그렸는데, 이 작품 역시 금강산의 실제 절경을 표현한 것으로 진경 산수화의 대표적인 작품이 되었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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