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묄렌도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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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속 인물인 묄렌도르프(Paul Georg von Möllendorff, 1848~1901)는 1882년(조선 고종 19)에 중국 이훙장[李鴻章]의 추천으로 조선의 외교고문에 임명된 최초의 서양인으로, 동양식 이름은 목인덕(穆麟德)이다.

조선 정부는 1882년 임오군란이 일어나자 급박한 주변정세에 대응하고 각국과의 외교 및 통상업무를 처리하기 위해 청에 제3국인 고문관을 보내 줄 것을 요청하였다. 따라서 청국 주재 독일 영사관과 세관에서 근무하던 묄렌도르프가 외교 고문으로서 조선에 와서 해관총세무사(海關總稅務司)가 되어 외교뿐만 아니라 통상무역 업무까지 총괄하였다.

묄렌도르프는 조선에서 통역관의 필요성을 제기하여 1883년에 통역관을 육성하는 동문학(同文學)이 설립하는데 영향을 끼쳤다. 뿐만 아니라 외교 고문답게 각종 외교 정책을 결정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다. 1884년 조선과 러시아가 수호 통상 조약을 맺는데 크게 기여하였고, 그해 12월에 갑신정변이 일어나자 청 군대가 개화파 정부를 무너뜨리고 민씨 정권을 복귀시키는데 앞장섰다. 또한 1885년 영국이 러시아의 조선 진출을 견제하기 위해 거문도를 불법으로 점령하자, 이를 강력하게 항의하기도 하였다.

영국의 거문도 점령 사건이 발생하자 묄렌도르프는 엄세영(嚴世永)과 함께 일본을 방문해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한편, 주동경(駐東京) 러시아공사와 러시아육군교관 초빙문제를 의논했다. 그런데 조선과 러시아의 이러한 비밀협정이 누설되자 고종은 이의 책임을 묄렌도르프에게 넘겨 결국 조선의 총세무사에서 해임되어 청국으로 돌아갔다.

이후 1901년 중국 닝보(寧波)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저서로 『만주어문전(滿洲語文典)』이 있으며, 조선에서 머물었던 경험은 그의 아내 로잘리에 의해 『묄렌도르프의 수기』에 담겨 출판되었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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