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 속 이미지 자료주제별근대개화와 자주 운동

한반도를 둘러싼 열강의 각축(풍자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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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1887년 2월 15일자 『도바에(TOBAE)』에 실린 비고의 풍자화로, 한반도를 둘러싼 열강의 각축 현황을 잘 보여 주고 있다. ‘COREE’라고 적혀 있어 조선을 비유하고 있는 물고기를 놓고 일본과 청나라가 서로 낚으려고 다투고 있는 가운데, 러시아가 기회를 노리고 있는 모습을 그려 놓았다.

19세기 중엽부터 근대적 개혁을 추진한 청과 일본은 언제나 조선에 진출할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청은 전통적인 종주권을 내세워 조선을 지배하려 하였고, 일본은 자국의 이익과 대륙 진출이라는 야심을 위해 조선에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하였다. 그런데 1882년에 일어난 임오군란은 먼저 청나라에 기회를 가져다 주었다. 청은 군란을 진압하기 위해 군대를 파견하였고,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조선의 내정을 간섭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1884년 갑신정변 이후로도 이어진다. 일본의 지원을 약속 받고 개혁을 추진한 개화파갑신정변은 청나라 군대의 진압에 의해 3일 만에 막을 내렸다. 이후 청나라의 내정 간섭과 경제적인 침투는 더욱 심화되었다. 한편 일본은 청나라와 1885년에 톈진 조약을 체결하는데, 청과 일본이 조선에서 군대를 철수시키는데 합의하고, 차후 조선에 파병할 때에는 서로 통보한다는 내용을 합의하였다.

톈진 조약은 1894년 동학 농민 운동을 진압하기 위해 청나라가 출병했을 때, 일본군이 한반도에 들어오게 되는 빌미를 제공하였다. 일본군은 곧바로 경복궁을 점령하고 친일 내각을 세운 후 청나라와 전쟁을 일으켜, 청나라를 한반도에서 완전히 몰아내는데 성공하였다. 1895년 일본 세력을 견제하려는 조선 정부가 친러 경향으로 기울자, 일본은 명성황후를 시해하는 을미사변을 일으켰으나, 고종아관파천으로 다시 주도권을 상실하게 되었다.

이렇듯 19세기 말의 조선은 청나라와 일본, 러시아 세력의 간섭을 받으면서, 근대화라는 당면 과제를 주체적이고 능동적으로 해결하는데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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