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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와 일본의 대립 풍자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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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1901년에 『펀치』에 게재되었던 러시아와 일본의 대립을 풍자하고 있는 삽화이다. 만주와 한반도의 지배권을 두고 곰으로 비유한 러시아와 사무라이로 표현한 일본이 대립하고 있는 모습을 그림으로 나타냈다.

청⋅일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시모노세키 조약에 의해 요동반도까지 차지하였다. 그러나 러시아, 프랑스, 독일의 삼국 간섭으로 요동 땅을 다시 반환하게 되었고 한반도에 대한 우위권까지 위협받기에 이르렀다.

1904년에 접어들면서 러시아와 일본의 전쟁 개시가 촉박해지자, 대한제국은 국외중립을 선언하고 이를 각국에 통고하였다. 그러나 일본은 대한제국의 중립선언을 무시하고 대규모 군대를 투입하여 전국 요지에 군대를 주둔시켰다. 그리고 대한제국 정부를 위협하여 일본군이 전략상 필요한 지역을 마음대로 사용하고, 일본의 동의 없이 제3국과 조약을 체결할 수 없다는 내용의 한⋅일 의정서를 체결하였다.

이후 러일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조선을 보호국화 하기 위한 절차를 밟아 나갔다. 1905년 7월 미국과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맺어 일본이 미국의 필리핀 지배를 인정하는 대신 미국으로부터 일본의 한국 지배를 승인받았고, 다음 달에는 제2차 영일 동맹을 맺어 한국에 대한 일본의 독점적 지배권을 인정받았다. 그리고 같은 해 9월 패전국인 러시아와 포츠머스 조약을 체결하여 한국에서의 정치⋅군사⋅경제 등에 관한 특수 권익을 인정받게 된다.

이와 같이 일본은 열강으로부터 한국에 대한 독점 지배를 인정받은 뒤, 11월에 대한제국 황제를 위협하고 미리 매수한 을사오적(이완용, 이근택, 이지용, 박제순, 권중현)을 앞세워 일방적으로 조약 체결을 선포하였다. 이른바 ‘을사늑약’의 결과 조선은 외교권을 박탈당하였고, 여러 부문에 걸쳐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1841~1909] 초대 통감의 간섭을 받아야만 했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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